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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Report ② 친구이거나 자매인 브랜드

중앙일보

입력

패션의 세계를 말로 표현하기란 참 애매하다. 예를 들어 유행하는 같은 스타일의 청바지라 해도 사람마다 선호하는 브랜드가 다르다. 브랜드에 따라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만일 누군가 그차이를 묻는다면 ‘느낌’이 다르다고 대답할 것이다. 패션에 둔감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이다. 모호하기 짝이 없지만 이런 ‘느낌’은 쇼핑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관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느낌에 기대어 브랜드를 고른다. 간혹 예민한 여성들은 느낌이 비슷한 다른 브랜드를 발견하기도 한다. 컨셉트가 다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브랜드와 닮은 구석을 발견하는 것이다. 트렌드 리포트 두 번째는 ‘알고 보니 친구, 혹은 자매인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4월 ‘메라하트’란 브랜드가 인사동에 문을 열었다. 캄보디아와 인도, 태국 등의 배틀 농가에서 짠 옷·소품을 파는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이다. 국내 최초 민간기업공정무역(소외된 생산자들과 공평하고 지속적인 거래를 맺어 세계무역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전 세계적인 운동)브랜드다. 메라하트는 흙이나 꽃·풀·나무 같은 자연재료를 통해 실과 옷감에 물을 들인다. 진흙염색을 하고 쐐기풀로 옷을 만드는 브랜드 ‘이새’와 느낌이 비슷하다.

 실제로 이 둘은 모회사가 같다. 메라하트는 친환경과 핸드메이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새 FnC의 정경아 대표가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인도와 네팔, 태국 등의 현장을 직접 접하며 3년 전부터 계획한 브랜드다. ‘이새’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대중화되면서 이새에서 소화하지 못한 부분을 메라하트에서 집중하려 했다. 그간 공정무역 제품들의 디자인이 약했던 것을 보완하기 위해, 이새 디자이너를 현지로 파견해 디자인 품질을 높였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이새를 아는 사람이라면 메라하트의 컨셉트를 금세 이해하게 된다. 둘은 ?자매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이새와 메라하트는 성향이 같은 ‘자매’지만 각기 개성이 뚜렷한 4자매도 있다. 예를 들어 브랜드‘르베이지’는 2009년 론칭했다. 심플한 실루엣이 특징으로 ‘성숙한 40?50대 여성이 입을만한 고급스러운 옷’이 컨셉트다. 르베이지를 본, 패션에 민감한 몇몇 여성들은 느낌이 비슷한 어떤 브랜드를 떠올렸다. 바로 ‘구호’다. 구호는 디자이너 정구호가 1997년 청담동에 부티크 숍을 열며 시작됐다. 초창기 구호는 미니멀리즘을 대표했다. 절제되고 심플한 미니멀리즘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유행해 프라다, 질 샌더 같은 브랜드들이 인기를 끌었다. 구호의 옷은 겉이 화려하지 않지만 입었을 때의 실루엣이 예쁘다는 이용자들의 후문으로 매니어층을 확보했다. 또 눈에 띄지 않는, 은근한 디테일이 돋보였다. 유행하는 같은 바지라도 뒤를 보면 독특한 주머니가 달려있거나 하는 식이다. 덕분에 ‘구호 스타일’이란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비슷한 트렌드 속 색다른 시도 위해 브랜드 나눠

 2003년 제일모직에서 구호를 인수하고 디자이너 정구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이후에는 미니멀리즘에 아방가르드가 더해졌다. 구호만의 개성은 가져가되 다른 곳에서 하지 않는 실험적인 시도를 더했다.

 구호를 여성에 비유한다면 20~30대의 우아하고 점잖으며 깔끔한 여자다. 르베이지는 구호처럼 심플함을 추구하지만 더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진 40~50대의 여성이다. 르베이지가 생긴 이유 중 하나는 구호와 함께 했던 고객들이 나이가 들며, 구호만으로 만족할 수 없게 돼서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그에 맞는 옷이 필요해진다. 그렇다고 구호를 입다가 40~50대를 맞은 여성들이 갑자기 부티크 매장의 옷을 입진 않는다. 제일모직은 이들을 타깃으로 해 르베이지를 만들었다.

 르베이지가 구호의 ?품격 있는 언니?라면, 데레쿠니는 이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훨씬 여성스러운 40?50대 언니다. 심플하고 쿨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었을 때 처럼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룩을 좋아하는 여성도 있다. 데레쿠니는 이런 화려한 시니어 여성층을 타깃으로 했다.

 언니들에 비하면 막내는 예측불허다. 좀처럼 감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자매로 연관 짓기가 어렵다. 올 2월에 갤러리아 백화점 압구정점에 문을 연 에피타프가 4자매의 막내다. 에피타프의 사전적 뜻은 ‘묘비명’으로 이름부터 드세다. ‘비석에 새길 정도로 영원히 기억되고 사랑 받고 싶다’는 의도에서 이름 붙여졌다. 20대 중후반~30대 초반의 개성 넘치고, 트렌드를 리드하는 이들을 위한 브랜드로 색감이 화려하고 스타일도 다채롭다.

 비슷하지만 다른, 또 다르지만 비슷한 여러 브랜드를 기업이 가지고 가는 이유는 그만큼 여성복 시장이 세분화됐기 때문이다. 제일모직 레이디스사업부 김정미 상무는 “10명의 여성에게 1개의 옷을 보여주면 10가지 평이 나온다”며 “아무리 좋은 브랜드라해도 1개 브랜드로는 소비자에게 어필하기에 어렵다”고 말했다. 그만큼 한국의 패션시장이 다양하고 전문화됐으며 소비자의 눈도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소비자 눈 높아져 한 브랜드로는 어필 어려워져

 신규 브랜드가 자리를 잡으려면 2~3년이 걸리기에 그 선두에 성공한 브랜드가 있다는 건 힘이 된다. 김 상무는 “신규 론칭에는 선두 브랜드의 변화와 발전이라는 과제도 함께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자라가 속해 있는 모회사 인디텍스그룹 역시 제일모직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지난해 인디텍스의 전 세계 매출 중 자라가 64.8%, 그 외 브랜드의 매출이 35.2%를 차지했다.

 구호와 르베이지처럼, 인디텍스에서 진행하는 브랜드들의 ‘느낌’도 조금씩 비슷하다. 보통 자라 매장 2층에는 자라의 캐주얼군 옷이 진열돼 있다. 그런데이 옷들은 인디텍스에서 나오는 이지캐주얼 브랜드 ‘풀앤베어’와 느낌이 얼핏 비슷하다. 또 인디텍스 브랜드 중 여성 정장 캐주얼을 모토로 하는 ‘스타라디바리우스’ 역시 깔끔하고 심플한 정장풍의 자라 베이식 라인과 상당히 닮았다.

 인디텍스가 다양한 브랜드를 전개하는 이유 역시 제일모직과 같다. 그런데 인디텍스는 의외로 어떤 한 브랜드를 전개함에 있어 선두가 되는 브랜드를 염두에 두거나 하진 않는다고 한다. ‘자라 스타일’이란 말은 개개인의 느낌일 뿐이지 인디텍스 측이 의도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단, 인디텍스는 어떤 브랜드를 전개하더라도 최신 디자인을,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품질로, 쇼핑의 핵심 요지인 매장에서 공급한다는 4가지 요소를 충실히 따른다고 말한다.

 동시대에 소비자가 원하는 트렌드가 비슷하다는 점도 ‘다르면서 같은 느낌’의 이유다. 브랜드마다 특색에 맞게 트렌드를 흡수해 아이템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인디텍스를 예로 들면 트렌드를 좋은 소재로 클래식하게 표현한 것이 ‘마시모 두띠’, 튀는 컬러?디자인으로 만들면 ‘버쉬카’, 여성스럽게 표현해 내면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자라가 론칭된 데 이어 2010년에는 마시모 두띠, 2011년에는 버쉬카·풀앤베어·스타라디바리우스가 연이어 문을 열었다. 일본에서는 2011년에 버쉬카가 첫 매장을 열었는데 이는 자라가 1998년 도쿄 시부야에 첫 매장을 오픈한지 13년만의 일이었다. 일본에 비해서도 한국의 패션시장이 얼마나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는지에 대한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친구 혹은 자매? 브랜드 훔쳐보기

①⑥ 자연염색을 하는 브랜드 이새와 국내 최초 민간기업 공정무역 브랜드인 메라하트는 자매 브랜드다. 사진 1은 이새의 2012년 봄여름 옷, 사진 2는 메라하트의 볼가바구니(아프리카 산)다. 이 바구니는 미쉘 오바마 여사가 공정무역 행사에 들고 나와 화제가 됐다.
② 데레쿠니는 제일모직이 200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론칭 했었던 브랜드다. 당시 이탈리아 보그지에 주목해야 할 신규 브랜드로 소개되며 성장했었지만 2008년 외환위기로 브랜드를 잠시 접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기본 타깃은 40?50대지만 팬시한 원피스, 여성스러운 트위드 재킷처럼 나이에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 많다.
③ 2010년 12월 한국에 론칭한 마시모 두띠는 자라보다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실제로 모회사인 인디텍스 그룹 안의 여러 브랜드 중 가장 타깃 고객층이 높다. 좋은 소재로 만드는 클래식한 옷이 컨셉트다. 매장은 가로수 길과 강남역에 있다.
④ 버쉬카는 트렌드에 민감한 어린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1998년 인디텍스 그룹에서 기획된 브랜드다. 론칭한지 13년 만에 54개 국가에 750개 이상의 매장을 냈다. 한국에는 지난해 디큐브시티(신도림) 안에 문을 열었다.
⑤ 자연주의 화장품인 록시땅과 오가닉 뷰티 브랜드 멜비타도 자매 브랜드다. 록시땅은 프랑스 프로방스의 마노스크에서, 멜비타는 라고스의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록시땅은 프로방스 식물 성분에 키워드를 두며, 멜비타는 전 제품이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사진은 멜비타 로즈 플로럴 워터.
⑦ 구두 편집매장 라꼴렉시옹에서도 닮은 꼴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디자이너 르네 까오빌라의 구두 ‘르네 까오빌라(사진)’와, 그녀의 딸 조지아 까오빌라의 구두 ‘오주르’다. 르네는 오뜨 꾸띄르 구두를 만들며 딸이 만든 오주르 브랜드는 보다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5~7cm 굽의 구두다.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제일모직·인디텍스코리아·이새FnC·라꼴렉시옹?멜비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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