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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파 관심 없다, 국민 원하는 것 추구할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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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12월 4일 독일 오펜바흐에서 열린 해적당 모임에서 한 해적당 당원이 해적 모자를 쓰고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당은 지난해 9월 베를린 광역의원 선거에서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해적당은 인터넷 자유 등을 당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오펜바흐 AP=연합뉴스]

지난달 13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쾰른·뒤셀도르프 등 대도시와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루르 공업지대가 몰려 있는 이곳은 인구 1800만 명의 독일 최대 주다. 이날 주의회 선거에서 독일 해적당은 7.8%를 득표해 20석을 얻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독교민주당(CDU)과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자유민주당(FDP)이 8.6%를 득표했으니 신생 해적당의 성과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2006년 창당한 해적당은 지난해 9월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 8.9%를 득표하며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해적당을 컴퓨터 폐인, 괴짜들이 모여 만든 정체불명의 집단이라고 폄하하던 독일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이어지는 해적당의 선전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율리아 슈람

 본지는 지난달 22일 옛 동베를린 지역에 있는 해적당 중앙당사를 찾아 인기 비결을 물었다. 버스 종점에 있는 허름한 건물 1층에 자리한 중앙당사는 당사라기보단 구멍가게를 연상케 했다. 혀에 구슬을 박고 팔엔 문신을 한 율리아 슈람(26) 최고위원은 당사 앞 보도블록에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자고 했다. 그는 해적당 중앙위원회 9명의 최고위원 가운데 최연소 위원이자 유일한 여성이다.

 -당 이름이 해적당이라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겠다.

 “(독일 보수 여당인) 기민당은 늙은 할아버지 느낌, 녹색당은 히피 이미지처럼 정당마다 고착된 선입견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건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해적당은 정책 어젠다도 없지 않나.

 “언론에서 유럽 재정위기, 외교안보 등에 대한 견해를 말하라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책이 국민의 직접 참여를 통해 투명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지 긴축정책을 지지하는지, 성장정책을 지지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인터넷 회의만 하나.

 “그런 셈이다. ‘리퀴드 피드백(Liquid Feedback)’이라는 자체 프로그램에 시민들이 의견을 올리면 온라인 끝장토론을 통해 당론으로 채택한다.”

 -해적당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그런 의미 없는 질문 좀 하지 마라. 우리 당 전 대표는 기민당 출신이고, 당원 가운데는 녹색당 출신도 많다. 우리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어떤 정책이 좌파 정책인지 우파 정책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랬다. 자유분방하고 2030세대 중심인 해적당 급부상의 최대 피해자는 그동안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아왔던 녹색당이다. 독일 양대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SPD)에 이어 제3당인 녹색당은 1980년 창당 이래 원전 반대 등 진보적 어젠다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기성 정당과 다를 게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타 묄러링 해적당 홍보담당은 “녹색당은 정파와 이념을 위한 정당이 돼버렸다. 아직도 녹색당이 진보라고 믿는 40~50대가 지지할 뿐 요즘 젊은이들은 그게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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