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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의원 女접대부랑 술판' 폭로한 女의원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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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임수경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당선권 마지막 순번인 2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선 직후인 4월 14일 제주를 찾아 ‘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한 집중행동의 날’에 참가해 “정치 입문 이유 중 하나가 강정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일엔 통일부에 개성공단 방문을 위한 방북신청서를 접수시켰다. 이때 “2001년 평양의 8·15 공동행사에 참가하는 등 지금까지 세 번이나 방북했다”며 “앞으로 남북관계에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당의 한반도평화본부(본부장 이해찬) 소속인 그는 연평도와 도라산전망대를 잇따라 방문했다. 지난달 30일엔 민주당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문재인 의원을 지지하는 ‘담쟁이 포럼’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의 비례대표 공천엔 임종석 전 사무총장 등 일부 486의원과 함께 노무현계 일각의 힘이 작용했다. 당 관계자는 “당권을 잡고 있던 이들이 2월부터 임수경씨를 지역구나 비례대표로 전략 공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며 “중도층 표가 이탈할 수 있고, 전문성 있는 대북 전문가를 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결국 심사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3월에는 함세웅·문규현 신부, 김상근 목사 등 40여 명이 “임씨는 극한 대결 상태에 있던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줬다”며 지지성명을 냈다.

 임 의원은 한국외국어대(용인 캠퍼스) 86학번으로, 이석기(외국어대 용인캠퍼스 82학번) 통합진보당 의원의 4년 후배다. 불문과 4학년에 재학 중(1989년) 방북,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참석했다. 당시 전대협 의장(3기)이 임종석 전 사무총장이다. 그의 방북엔 NL(민족해방)계 주사파 조직이 관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임 의원은 당시 출국 목적을 ‘관광’으로 해 일본·독일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다. 그는 정의구현사제단이 파견한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걸어서 한국에 돌아왔다.

 ‘통일의 꽃’이라는 호칭도 이때 얻었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92년 가석방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99년 사면복권됐다. 90년 북한은 그에게 조국통일상을, 김일성종합대학은 졸업증을 각각 수여했다. 출소 후 서강대 등을 거쳐 미국 코넬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인권학을 공부한 뒤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다.

 2000년 5월 17일 광주 민주화운동 전야제 때 386 국회의원들이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단란주점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사실을 인터넷에 폭로하기도 했다. 폭로글은 온라인에 삽시간에 퍼져 386 의원의 도덕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줬다. 당시 임 의원은 운동권 인사들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2005년엔 필리핀으로 영어 어학연수를 보낸 아들이 익사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임 의원은 3월 30일 라디오 에 출연해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관한 질문에 “(박선영 자유선진당 전 의원 등이 ) 애쓰고 계시지만 실질적인 해결방안인지 생각해야 한다”며 “북한이나 중국을 자극하는 것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탈북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해선 “북한이 실제로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건지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극단적 대결정책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 느냐”고 했었다.

알려왔습니다 한명숙 의원실은 본지 6월 4일자 3면 ‘임수경 의원의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엔 임종석 전 사무총장 등과 한명숙 전 대표의 힘이 작용했다’는 기사와 관련, “당시 임 의원의 공천은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의 독립된 심사를 거쳐 이뤄졌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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