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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경의 영화속 집이야기 '닥터지바고' '철도원'

중앙일보

입력

올 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고 맹추위가 살을 에인다. 며칠 후면 입춘이지만 여전히 추위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이럴 때 우리보다 훨씬 더 추운 지방의 겨울풍경을 영화로 보는 것은 한 폭의 서정시를 대하듯 푸근함을 안겨준다.

'닥터 지바고' 와 '철도원' 은 눈 경치와 눈으로 얼어붙은 집들로 시작되고 끝나는 영화다.

오래된 영화지만 지금 보아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없는 '닥터 지바고' (사진?)에는 어린 지바고가 엄마를 잃은 밤 눈보라치는 들판을 내다보는 눈꽃 덮인 유리창, 레이스커튼과 촛불이 은은히 들여다보이는 성에 낀 유리창, 그리고 연인 라라가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성에 낀 유리창을 닦다 못해 유리를 깨 버리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겨울 창문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또 집안 난로에 불이 타고 있는데 집 바깥에는 전체가 고드름으로 덮인 모습은 추운 지방의 주택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최근 우리 주위에서 성에 낀 유리창을 보는 일은 드물어졌다. 이중유리에 난방이 잘되는 집들이 많아진 탓이다.

이밖에도 '닥터 지바고' 에는 공산혁명으로 주택이 변해가는 모습이 자세히 그려진다. 혁명 전 주인공들이 살던 모스크바의 우아한 도시주택을 노동자들이 적의에 찬 목소리로 '이런 넓은 곳에 한 가족이 사는 것은 부르주아의 잔재' 라고 몰아붙이며 13가구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으로 바꿔 버린다. 혁명이 가지는 의미가 주택에서부터 나타나는 부분이다.

최근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철도원' 은 눈이 많은 홋카이도 탄광촌에 위치한 역이 배경으로 영화 전체에서 눈 덮인 산과 들, 산촌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주인공이 반평생을 살아온 역에 붙은 관사는 조그만 난로에 다타미방, 유리 미닫이 문 등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지만 먼저 세상을 뜬 착한 아내의 추억을 담고 있고, 어릴 때 세상 떠난 딸이 자라는 환영(幻影)을 보여주는 정겨운 그의 보금자리다.

눈이 가득 쌓인 역 플랫폼에서 세상을 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슬프기보다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눈이 주는 서정성 때문이리라. 추운 영화를 보며 추위를 견디다 보면 곧 봄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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