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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를 다지자] 28. 정보화 외면하는 중소기업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여름 한 지방 중소업체의 50대 오너 사장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 인터넷이나 e-메일을 좀 활용하시나요.
"글쎄, e-메일이 팩스보다야 더 편하겠어요. 이 나이에 자판 치는 걸 배우기도 힘들고…. "

- 홈페이지는요.
"본 적은 있지만 우리처럼 작은 업체가 1백만원 넘게 들여 홈페이지 만들어 봤자 누가 봐주나요. 차라리 '찌라시' (광고 전단)를 더 돌리는 게 낫지요. "

그는 지난해 봄 인근의 2백여 중소업체와 함께 3천만원을 모아 제품 카탈로그를 세계 각국에 보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 그래, 카탈로그를 보고 해외에서 문의가 왔나요.
"곧 오겠지요, 뭐. "

미안한 이야기지만 카탈로그 대부분이 이미 휴지통에 처박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5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후 5만여 회원사에 '굴뚝기업에 정보통신의 날개를 달자' 고 설득해 왔다.

전국 62개 지방상의를 순회하거나 틈날 때마다 기업 정보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규모가 작고 중소도시에 있는 기업일수록 정보화 마인드가 더뎠다.

이제 e-비즈니스는 기업의 전자상거래와 해외진출에 꼭 필요한 기초도구가 됐다.

전사적 자원관리(ERP)등 높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e-메일과 홈페이지는 필수다. 하지만 많은 지방 중소업체들은 이를 대기업.벤처기업의 전유물인양 여긴다. 팩스.카탈로그.기안서류에 더 편안해 한다.

대한상의는 정부 도움으로 홈페이지와 e-메일을 중소업체에 만들어주는 운동을 넉달째 벌이고 있다.

그러나 수만 중소업체 회원사의 신청건수는 겨우 1백여건. 한국을 인터넷 강국이라고 한다. 인터넷 인구는 2천만명에 육박하고 초고속통신망 가입은 3백만 회선을 넘어섰다. 디지털 통신망이 없는 신축 아파트는 잘 팔리지 않을 정도다.

인터넷을 모르면 초등학생부터 대학원까지 수업받기도 어렵게 됐다. 하지만 이런 열기가 젊은 네티즌의 채팅이나 동호회, 단순 정보검색 등에 그친다면 국부 증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디지털' 은 선진.후진국을 가를 키워드다. 미국 뉴욕시 인터넷 인구는 아프리카 전체보다 많다. 국내에선 정보화가 대기업.중소기업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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