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구에서가장 빠르고 가장 뜨거운 춤이 온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터키 영화의 제목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Once Upon A Time In Anatolia)’였다. 어렵고 길고 지루한 예술영화의 내용은 차치하자. 터키 감독은 “옛날 옛적에…”라고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듯 영화 제목을 지었는데, 하필 이야기의 무대가 아나톨리아다.

그리고 6일 한국에 첫선을 보이는 터키의 국가대표급 공연도 아나톨리아를 무대로 삼았다. 터키의 열정과 신화를 담은 ‘파이어 오브 아나톨리아(Fire of Anatolia)’다. 전 세계 투어 10년 만에 85개국에서 2000만 명이 관람한, 터키가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는 무용 공연이다.

그리스어 ‘아나톨레(anatole)’에서 유래한 아나톨리아는 ‘태양이 떠오르는 곳’ ‘동방의 땅’을 뜻한다. 터키 영토의 97%를 차지하는 아시아의 서쪽 끝 반도다.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남북으로 연계하는 이곳은 오래전부터 교통의 요지였고, 자연스레 문명이 꽃을 피웠다. 그리스·로마를 비롯해 이집트에 맞선 히타이트 문명까지 다채로운 문명의 토대가 된 아나톨리아에서 터키의 오랜 역사는 시작됐다.

공연 속엔 고대문명의 신화가 버무려져 있다. 이를 표현하는 몸짓은 3000여 가지에 이르는 터키의 민속춤과 발레, 현대무용 등 장르를 망라한 다양한 춤이다.

무대는 태초의 불로부터 시작한다. 불멸의 산에 피어오른 불꽃은 모든 생명체에 축복을 내린다. 신성한 몸짓의 언어가 불길 속에 젖어드는 가운데 아나톨리아인,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 불을 가져다줬다. 불의 제전을 통해 생명이 꽃을 피우지만 이내 멋대로인 인간에게 신의 형벌이 내려진다. 모든 악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 악이 지배하게 된 인간 세상엔 곧 선과 악의 전쟁이 벌어진다. 웅장한 북소리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치열한 전쟁의 군무가 극을 절정으로 이끌어 간다.

몸짓으로 풀어낸 신화의 울림은 상상 이상이다. 특히 전통춤에 따라 달라지는 화려한 의상과 둥둥둥 무대를 호령하는 북소리, 40여 명의 무용수가 무대를 오르내리며 펼치는 웅장한 군무는 터키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깊고 역동적이다.

동서양이 만나는 터키의 신비로움을 잘 활용한 ‘파이어 오브 아나톨리아’ 공연은 1990년대 말 한 개인의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무용단을 이끌면서 공연을 총감독하는 무스타파 에르도안이다. 앙카라의 빌켄트 대학에서 민속춤을 연구하던 그는 99년 ‘Sultans of Dance’라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지역 신문에 무용수를 모집하는 광고를 내고 750명의 지원자 중 90명을 선발했다. 1년6개월 동안 이들을 엄격한 관리 하에 훈련시키면서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무용수들이 발레, 현대무용, 다양한 민속춤을 익히게끔 했다. 넓은 아나톨리아 반도 곳곳의 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됐고, 2001년 첫 공연이 열렸다. 수개월 전에 티켓이 매진되면서 터키 국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끈 공연은 이듬해 전 세계 투어에 나섰다.

그야말로 ‘쇼’라 불릴 만큼 강렬한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은 기네스북에 오른 진기록도 갖고 있다.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춤’. 터키 안탈리아 남부에 있는, 2000년 전 만들어진 아스펜도스 극장에서 2009년 열린 무대에서 1분에 241번 스텝을 밟는 춤을 선보였다. 초당 네 번 발을 구른 이들의 춤은 인간이 음악에 맞춰 출 수 있는 가장 리듬감 넘치는 춤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또 다른 기록은 ‘가장 많은 관객이 관람한 공연’이다. 흑해 인근 에레클리 지역에서 동시에 40만 명이 스탠딩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 공연은 2012 여수 세계박람회에 참가하는 터키가 국가 홍보의 일환으로 마련했으며 터키 대사관이 후원한다.

터키의 민속춤
제이베크(Zeybek) 터키 서부에서 전해진다. 남자들만 추는 춤으로 원형으로 서 있다가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팔은 어깨 높이로 올리는 동작으로 이뤄진다.
호론(Horon) 흑해 연안의 춤. 물 밖에 나온 물고기가 몸을 떨듯 춤춘다.
할라이(Halay) 중앙 아나톨리아의 춤으로 반원형으로 서서 서로의 손이나 어깨를 잡고 스텝과 방향을 조절하며 춘다.
차이다 츠라(Cayda cira) 여자들끼리만 촛불을 들고 추는 서부의 민속춤. 보통 결혼식 전날 밤 신부의 집에서 춘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제이에스아이 파트너스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