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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된 민생대책으로 승부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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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호 31면

지금 세계경제를 보면 미국경제 회복은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고, 유럽경제는 그리스 사태에다 스페인 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혼미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올해 치러질 주요국의 선거들이 세계경제의 진로에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줄 것으로 보인다.

유럽 쪽을 보면 프랑스에서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정권을 잡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 수습의 새로운 변수가 되었다. 올랑드는 재정긴축 정책을 재정확대 정책으로 수정해 성장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연간 재정적자가 3%를 초과하거나 총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으면 EU 차원의 제재를 가하기로 합의했던 신(新)재정협약의 수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랑드의 이런 정책은 “실업은 느는데 복지혜택을 줄이느냐”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스페인·이탈리아 같은 재정취약 국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메르켈 정부는 경제성장도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듯하나 경제성장은 비효율을 줄이는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를 통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방법론상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올랑드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 공공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책을 내놓자 유럽 증시가 폭락하고 유로화 가치가 하락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올랑드는 연소득 100만 유로(약 15억원)에 적용하는 소득세 최고 세율을 41%에서 75%까지 대폭 올리는 부자증세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세계자본주의의 진화과정을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자유방임주의는 산업혁명이란 꽃을 피웠지만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시스템 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미국은 케인스식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하면서 자유시장경제의 위험요소를 제거해주는 정부개입주의를 정당화시켰다. 이후 30여 년간 전 세계에선 ‘정부의 시장개입 최소화, 자유경쟁의 극대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꾀하는 신자유주의 바람이 우세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세력의 탐욕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전 세계가 한꺼번에 대량실업과 기업 파산 그리고 자산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바야흐로 프랑스의 사회당 정권은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자본주의를 수정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성패는 장담할 수 없다. 경제가 계속 나빠져 만약 프랑스 사회당이 10월 총선에서 패배하면 좌우 동거 정권이란 시련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지지율 5% 미만의 근소한 차로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게 앞서고 있지만 둘의 대결은 예측을 불허한다. 오바마는 ‘미국경제가 이 지경이 된 건 공화당 정권의 8년 실정(失政)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롬니는 ‘오바마 정권이 금융위기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미국 내 여론조사에선 ‘부시 잘못’에 동의하는 비율이 48%로, ‘오바마 잘못’이라는 46%를 약간 상회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과거 심판론’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대선의 승패는 앞으로 누가 실효성 있는 정책대안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한국의 4·11 총선에선 공격수였던 민주통합당이 패배하고 수비수였던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이명박 정권 심판론’으로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민주당이 패배한 이유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차별, 중소기업 문제 등 민생경제 대책을 정치 이슈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12월 대선까지 6개월 남짓 시간이 남아 있다. 새누리당은 대선 후보 경쟁에 이미 들어갔고 민주당은 당 대표 경선 뒤 후보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다.

그러나 민생경제가 어려워져 삶이 팍팍한 국민에게 양대 정당의 당내 후보 경쟁은 새로운 희망이나 감동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후보 간 경제정책의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민생경제의 핵심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한지,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인지 후보 간 차별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세론’은 물론, ‘시대정신이 우리 편’이라는 민주당의 막연한 정권교체 기대감은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 요소가 되지 못한다.



강봉균 군산사범학교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행시 6회(1969년). 관료생활 31년 동안 정보통신부·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3선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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