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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화값 사상 최저 … 올 ‘셀 인디아’ 7조원 코끼리 비틀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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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질주하던 코끼리가 휘청거리고 있다. 인도 경제 얘기다. 코끼리는 인도의 상징이다. 2004년 총리에 취임한 만모한 싱 총리는 재임 5년간 연평균 9%를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며 “‘잠자는 코끼리’를 깨웠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 성장률이 추락하고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인도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외환 위기(currency crisis)’(크레디트스위스 뭄바이지점 주식 전략가 닐칸드 미시라의 16일 보고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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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분기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1%로 추락했다. 2008년 말 이후 최저치다. 7분기 연속 하락세다. 지난해 성장률은 당초 전망한 8%에서 6.9%로 떨어졌다.

 특히 인도 루피화 가치가 뚝 떨어졌다. 지난해 19%나 급락했다. 올 들어 2월 중순까지 오르는 듯하더니 다시 하락세다. 급기야 24일엔 달러당 루피화는 장중 56.37루피를 기록하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석 달 새 13% 넘게 가치가 떨어졌다. 인도 중앙은행이 루피화 가치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18일 현재 인도의 외환보유액은 약 2900억 달러다. 일주일 새 18억 달러가 줄었다. ING은행의 로버트 카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도가 루피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쓰지만 루피화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약한 방패(줄어든 외환보유액)는 루피화를 더 취약하게 만들고 투자처로서 인도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돈 가치의 하락은 기업의 가격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수출이 늘어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된다. 그러나 인도는 다르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크다. 원유의 경우 전체 수요의 80%를 수입으로 충당한다. 지난해 수출이 11% 늘었지만 수입은 그 두 배인 22% 증가했다. 지난달 인도의 무역수지는 134억 달러 적자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9억 달러에 비해 크게 늘었다.

 루피화 가치 하락에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안전자산 회귀 현상까지 겹치면서 외국인은 인도에서 발을 빼고 있다. 지난해 인도에서 외국인 투자는 2010년 대비 5분의 1까지 줄었다. 최근 5년 새 최저 수준이다. 29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 최근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인도 주식을 4200억 루피(약 6조9000억원) 팔아치웠다. 25일 하루에만 364억 루피(약 8000억원)어치 주식을 내놨다. 외국인이 돈을 빼니 주가도 떨어진다. 인도 뭄바이 증권거래소의 센섹스 지수는 올해 초 오르는 듯하더니 2월부터 하락세로 전환, 이달 들어서만 5% 가까이 떨어졌다.

 루피화 가치 하락은 물가 불안도 가져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인도는 고물가에 시달리게 됐다. 2008년 1분기에 6%였던 물가상승률은 2010년 1분기에 15%까지 치솟았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지만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7%를 웃돈다.

 재정적자도 심각해졌다. 인도 정부는 올해 재정적자 전망치를 GDP 대비 4.6%에서 5.9%로 올렸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달 초 “인도의 재정적자가 거시경제 여건을 위협할 수 있다”며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S&P는 지난달 인도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인도는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루피화 약세, 인플레이션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인도 중앙은행은 루피화 가치를 방어해야 하지만 외환보유액만 날릴까 걱정이다. 금리를 낮춰 경기를 살리고 싶지만 물가 자극이 우려된다. 정치적 리더십도 없다. 올해 초 스티븐 로치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보다 인도가 걱정”이라며 “인도는 정책 수단이 부족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크레디트아그리콜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다리우즈 코왈지크는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인도 정치인은 루피화 가치를 안정시키거나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일관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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