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팀결산 (13) - 신시내티 레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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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의 99년은 실로 놀라웠다. 그렉 본을 위시한 타선은 연일 큰 것을 터뜨렸으며, 스캇 윌리엄슨이 이끄는 불펜진은 철벽에 가까웠다.

96승으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오르는 기대 이상의 성공에 이어, 켄 그리피 주니어가 가세하자 그들은 점점 과대평가되기 시작했고, 지구우승이라는 부담감을 안은채 새로운 시즌을 맞이해야만 했다.

1. 화려한 출발

마이크 캐머룬 + 브렛 톰코 + 마이너리거 2명 + 연평균 1300만달러.

충격이었다. 신시내티는 포키 리즈나 션 케이시를 내주지도 않았으며, 연봉 2천만달러의 벽을 넘기지도 않았다. 누구도 상상못한 조건으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중 하나인 그리피를 낚은 것이다.

물론 그리피의 트레이드 거부권 행사, 다른 팀들의 소극적인 태도, 레즈가 아버지의 팀이라는 매력 등, 많은 외부요인이 작용하긴 했지만, 그리피의 영입은 그동안 '트레이드 짐' 짐 보든 단장이 행했던 수많은 트레이드중 분명 최고의 트레이드였다.

그리피가 레즈의 유니폼을 입자 ESPN의 팀 커크지언 등 몇몇 전문가들은 신시내티의 지구우승을 단언하기까지 했다.

2. 버스는 떠나가고

쉬어갈 곳이 없을 것으로 예상됐던 지난 시즌의 신시내티 타선.

배리 라킨
포키 리즈
켄 그리피 주니어
단테 비셰트
션 케이시
드미트리 영
에디 터벤시
애런 분

'빅 레드 머신' 시절 아버지의 등번호(30)를 물려받은 그리피의 부담감은 엄청났다.(.271 40홈런 118타점) 클럽하우스의 리더 라킨은 60경기를 결장했으며, "그리피와도 바꾸지 않겠다."라는 단장의 공헌에 주가가 치솟았던 리즈의 타율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렉 본의 대체용으로 영입된 비셰트는 5월말까지 2할2푼대의 타율에서 허우적댔으며, 케이시는 극심한 2년차 징크스에 시달렸다.

지난 시즌 신시내티의 타선은 경기당 5.07점을 뽑아냄으로써 5.34점이었던 99시즌과 별 차이가 없는 기록을 남겼지만, 이것은 대니 네이글을 트레이드하면서 시즌을 포기한 이후에 일어난 의미없는 불방망이 덕분이었다.

3. 요행을 바라다

그리피의 영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했던 신시내티의 스토브시즌은 결코 성공작이 아니었다. 마운드 보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99년 신시내티 투수진의 성공요인은 16승을 거뒀던 피트 하니시의 선전과 스티브 패리스의 깜짝 등장, 그리고 440이닝을 책임져준 불펜 5인방의 대활약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네이글이 돌아온다는 희소식이 있긴 했지만, 어깨부상에도 불구하고 시즌을 강행한 하니시, 여전히 불안한 패리스를 생각한다면 결코 지구우승을 바랄 수 있는 투수진이 아니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선발투수를 소홀히 한 그들에게 찾아온 결과는 하니시의 8승과 패리스의 17패였다.

3. 불펜으로 승부한다

현대야구에서 불펜체계가 확립된 이후, 선발등판을 하지 않는 불펜투수가 한 시즌에 1백이닝 이상을 투구한다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됐다.

하지만 99년 잭 맥키온 감독은 한 팀에서 한 명이 나오기 힘든 '불펜 1백이닝'을 2명이나 탄생시켰고(대니 그레이브스, 스캇 셜리번), 주전 마무리이자 신인투수인 스캇 윌리엄슨은 93이닝이나 던지게 했다.

시즌이 끝난후 맥키온 감독은 '올해의 감독'에 선정됐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가장 걱정됐던 부분은 혹사당한 불펜진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레이브스는 주전마무리로서의 첫 시즌을 완벽히 소화했고(2.56 10승5패 30세이브), 셜리번은 셋업맨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3.47 3승6패 3세이브22홀드)

윌리엄슨 역시 약간의 부진을 겪기도 했지만, 선발로 전향한 후반기에는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게이브 화이트가 빠진 공백은 매니 아야바가 대신했고, 애틀란타에서 뛰쳐나온 나온 마크 월러스도 28이닝에서 17개의 볼넷밖에(?) 허용하지 않으며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결국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신시내티의 불펜작전은 2년연속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잇몸이 이가 될 수는 없는 법.

4. 배리 라킨

지난 7월 신시내티는 유격수 라킨과 3년간 2천7백만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 사실 라킨은 보든 단장이 버리고 싶어했던 1순위 선수.

서른여섯살의 라킨은 더이상 완벽한 1번타자도, 골드글러브 유격수도 아니다. 물론 지난 시즌만을 두고 성급한 판단을 하는 것은 금물이겠지만, 팀의 리더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9백만달러를 줄 필요는 없었다. 이 곳은 그리피가 1천3백만달러를 받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든은 트레이드 거부권을 갖고 있던 라킨을 뉴욕 메츠로 보내지 못했고, 서른여섯살의 노장에게 팀내 2위 연봉을 안겨줬다. 그러나 라킨을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줬다면? 그 돈으로 선발투수를 구해왔다면? 구키 도킨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면?

5. 기로에 서다

올 시즌 역시 키는 선발투수들이 쥐고 있다. 하니시, 윌리엄슨, 랍 벨에 나머지 두 자리를 놓고 7명이 다툴 선발진은 여전히 불안해 보인다.

수비도 문제다. 좌·우익수의 좁은 범위로 인해 수비부담이 가중된 그리피는 공격력에서 큰 손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며, 골드글러버 2루수 리즈 역시 라킨과 케이시 사이에서 고전할 것이다. 풋내기 포수 제이슨 라루의 수비력 역시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임감독으로 밥 분을 영입했다는 것. 3루수 애런 분의 아버지이기도한 그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감독시절(95-97) 팀을 황폐화시켰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다.

허약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유망주 수집을 통해 재기를 노리고 있는 신시내티. 이 곳에서 분 감독은 '신인 킬러'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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