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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누군가 늘 지켜보는 어항 속 물고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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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민심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속내에선 까다롭다. 영호남이 강고한 지역 정서를 바탕으로 일관된 투표 성향을 보여준다면 충청은 예측이 쉽지 않았고 변화도 많았다. 자민련이 부상했다가 침몰했고, 자유선진당 역시 그렇다. 열린우리당이 싹쓸이를 하는가 하면(2004년 17대 총선), 지난 4·11 총선에선 선거 전 3석이던 새누리당이 12석으로 약진했다. 변화가 심하다 보니 전·현직 다선 의원들도 대부분 영호남에 몰려 있었다. 충청에도 다선 정치인들이 있지만 9선의 김종필 새누리당 명예고문이나 6선의 강창희 새누리당 당선인, 이인제 자유선진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당을 바꾸거나 전국구-지역구를 오가며 다선 고지에 올랐다.

이런 충청에서 박병석(대전 서구갑·사진) 민주통합당 의원은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선거 구호를 내걸어 4·11 총선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박 의원에 따르면 같은 당의 당적을 지키면서 연속 4선을 한 경우는 충청권 전체에서 첫 사례다. 그가 이번에 거둔 54.5%의 득표율은 충청권에선 최다 득표율이기도 하다. 24일 그를 만났더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매년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KTX를 250번 이상 탔다”며 “국회 회기 중엔 하루엔 네 번 KTX를 타며 서울과 대전을 두 차례 왕복한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까다로운 지역 민심에 어떻게 접근했나.
“지역구에서 저를 시의원·구의원보다 더 얼굴을 보기 쉬운 국회의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뛰었다. 하루에 네 번 KTX를 타는 날도 많았다. 새벽 대전에서 조기운동 모임을 찾았다가 오전 7시30분 KTX로 여의도에 올라와 오전 9시 당 회의에 참석하고 점심 땐 대전의 지역구 행사를 찾은 뒤 다시 서울에 올라와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고는 저녁 땐 대전에서 유권자들에게 인사드리는 식이었다. 그래서 몇몇 분은 ‘홍길동 같은 사람’이라고도 불렀다. 모두 고마운 말씀이다.”

-지역구 관리에 집중했다는 의미인가.
“2000년 첫 출마 당시 선거운동을 하던 중 재래시장인 대전 한민시장을 도는데 시장 한쪽의 만두집 주인 아주머니가 ‘이번에 당선되면 4년 후에 올 것 아니냐’고 하더라. ‘표를 찍어주면 나 몰라라 하다가 선거를 앞두고야 다시 나타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두고 보시죠’라고 답했다. 당선된 후 그해 추석에 만두집을 들렀는데 아주머니가 ‘이번이 (이곳을 찾은 게) 11번째’라고 하시더라. 지금 따져 보면 그 만두집은 100번 이상 갔을 것이다. 이번에도 선거운동을 하면서 체중이 7㎏ 줄었다. 지역구의 식당을 도는데 한 곳에선 ‘뭐 하러 다니느냐. 이젠 돌지 않아도 당선된다’고까지 했다. 그래도 저 자신은 물론 저를 돕는 분들까지 나태해질까봐 더 열심히 다녔다.”

-여기저기 다닌다고 표를 주는 것은 아닐 텐데.
“그렇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가가 중요하다. 국회의원은 ‘어항 속 물고기’다. (국회의원직에 나서기 전) 서울시 부시장으로 있으며 느꼈던 생각인데 국회의원을 해보니 역시 똑같다. 국회의원도 24시간 누군가가 지켜보며 일거수일투족을 판단하고 있다. 그러니 그만큼 성실해야 하고 그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의정생활 하는 동안 구설에 오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스스로를 어항 속 물고기로 여기고 민심을 두려워해야 유권자와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4선에 성공했지만 당으로 볼 땐 충청·강원에서 새누리당이 약진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92년부터 치러진 네 차례 대선에서 충청에서 이긴 후보가 모두 대통령이 됐다. 아슬아슬하게 이겼건 압도적으로 이겼건 충청 승자가 대선 승자였다. 그런데 충청 지역 유권자의 특성은 중도 성향이다. 이런 분들이 대단히 많다. 여기에 시사점이 있다. 4·11 총선에선 우리가 이런 ‘중간 지대’를 잃었던 게 패인 중 하나였다. 지금 민주통합당의 목표는 이런 중도 성향의 분들을 어떻게 잡는가로 가야 한다. 지역이건 이념이건 중원을 잡아야 한다.”

-당의 노선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진보의 방향은 맞지만 단계적·점진적으로 가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록에도 있듯이 정치는 국민보다 반 발짝 앞서 가야지 두세 발짝 너무 앞서가면 동의를 얻기 어렵다. 당이 경제적으론 진보 쪽으로 가더라도 안보에선 분명하고 확고하게 국민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에게 통일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현재 우리와 대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6·25전쟁을 겪은 국민에게 안보에서 신뢰감을 줘야 한다. 사실 중도는 정치적으론 ‘회색 지대’로 비칠 수 있다. 또 중도나 중도 진보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구호가 자극적이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그러니 언론이나 유권자에게 부각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대선에선 중도를 잡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지난 총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당 지도부가 발효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미 대사관에 전달했다.
“적절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FTA에 대한 정확한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한·미 FTA가 노무현 정부 때의 FTA보다 개악돼 이를 다시 당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재협상 요구였지 FTA 자체에 대한 폐기 요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가 무조건 폐기를 주장하는 것처럼 비쳤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가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야권연대를 어떻게 보나.
“선거 전략상 야권연대는 영역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필요하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서처럼 만약 통합진보당이 우리와 이념과 노선이 확실히 다른 집단까지 포함하고 있다면 그때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우리의 연대 대상이라면 이념·철학에서 헌법 질서에 맞는 정당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남북 간 체제 경쟁이 끝난 지 벌써 오래다. 대선에서 외연 확장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는 헌법적 질서의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국회부의장직에 도전했다. 19대 국회는 어떤 국회가 돼야 한다고 보나.
“국회 의장단이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국회의장이 청와대의 심부름꾼이 돼 직권상정에만 기대선 국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또 국회의장단은 정치력이 필요하다. 국회부의장도 의사봉만 두드려선 안 되고 여야가 협상과 타협에 나서도록 설득하고 중재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정당들도 바뀔 대목이 있다고 본다.
“현안마다 당론을 정해 이를 따르도록 의원들에게 요구하기보다는 당론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 당의 입장이 있더라도 크로스 보팅(상호교차 투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사실 이 대목은 우리의 지역주의 및 공천 시스템과 관련돼 있다. 영호남에선 공천을 받으면 무조건 당선이 되니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의식해야 하는 의원들로선 공천권을 행사할 당 지도부가 정한 당론을 거부하기가 어렵다. 폭력 국회는 공천과 맞닿아 있고, 공천은 지역주의와 연결되니 결국 지역 구도가 무너지지 않으면 국회 개혁도 어렵다.”

채병건?강나현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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