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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판 짜는 미국과 중국, 한국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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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호 30면

김동현·정찬성·추성훈 등이 진출한 미국의 이종종합격투기 UFC는 아주 직접적인 싸움판이다. 때리고, 꺾고, 누르고, 조이는, 모든 싸움 기술이 등장한다. 8각의 케이지 안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은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바로 상대에 의해 처절하게 얻어맞는다.

유광종 칼럼

이런 동물적인 싸움 형식에 관해 논란이 있지만 UFC는 어쨌든 사람의 원초적인 싸움 심리를 활용해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서양의 카우보이들이 상대와 마주선 뒤 카운트다운과 함께 총을 빼 들고 승부를 결정하는 싸움과 흡사하다.

중국 무술은 조금 다르다. 직접적인 대결보다는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식의 우회적인 싸움,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전법을 선호한다. 격투기 형식으로 발전한 중국 무술인 싼다(散打) 또한 사각의 링 안에서 상대를 넘어뜨리면 점수를 얻은 뒤 다시 두 사람 모두 일어선 상태로 싸움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중국인의 싸움 방식은 전체적으로 볼 때 세(勢)를 구축해 직접적으로 피를 튀기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하려는 중국의 고대 병법, 나아가 바둑판의 승부 세계와 닮았다.

이런 특성이 국가와 국가 사이의 다툼과 경쟁으로 이어지면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미국식 태도에 익숙하다.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부하면서 힘의 우위에 입각한 행동을 보였던 미국, 근육질의 막강한 싸움 기술을 지닌 백인 사내가 세계의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세계 2강(强)의 ‘G2’ 시대를 열면서 중국이 부상함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은 바둑판에서 세를 구축한 뒤 상대를 은근히 옥죄며 승리를 향해 다가서는, 아주 오래 숙성시킨 ‘전략’의 개념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과 중국의 힘 겨루기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구촌의 유일 수퍼파워로 행세하던 미국이 새로 부상하는 중국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은 이달 초 미국에 ‘G2’ 대신 ‘C2’의 시대를 열자고 제안했다. C라고 하면 누구나 중국의 영문자인 ‘China’를 떠올린다. 하지만 중국은 거기서의 C가 조정(Coordination)과 협력(Cooperation), 공동체(Community)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별 거부감 없이 중국의 제안을 수긍했다고 알려졌다. 중국의 ‘말발’이 먹히고 미국의 자신감은 줄어드는 분위기가 확 느껴지는 대목이다.

중국 관련 문제를 다루는 미국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건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되고 있다. 시각장애인 인권 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종국에는 중국의 허락을 받아 미국으로 출국하는 장면이 그랬다. 이런 분위기는 충칭(重慶)시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의 실각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보시라이의 수하로 중국 국가기밀을 가슴에 품고 있던 왕리쥔(王立軍)은 청두(成都)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36시간이나 있었지만 미국 정부는 그를 결국 중국 정부에 넘겼다. 이제 미국은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밀어붙이던 과거와 같은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왔다. 물론 미국이 자신의 철학과 이념을 한꺼번에 포기할 리는 없다. 그러나 강력한 힘을 지닌 중국의 부상에 따라 매사를 일방적으로 몰고가지는 못하는 형국이란 건 분명하다.

중국의 C2 제안은 미·중 양국이 벌이고 있는 세계 전략판 구성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도 두 강국은 냉정한 전략가의 입장에서 세계의 현안들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시 조율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둘의 경쟁과 다툼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까.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쳐 어느 한 마리가 이길 때까지 지켜본다는 중국식 성어 ‘좌산관호투(坐山觀虎鬪)’가 좋을까, 아니면 강 너머의 불을 내 일과 상관없다는 식으로 바라본다는 ‘격안관화(隔岸觀火)’로 일관할까.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미국과 중국의 민감한 이해가 교차하는 북한 문제, 나아가 한반도 통일이라는 매우 중차대한 현안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전법의 미국과 세를 구축하며 우회적이며 은밀하게 승리를 추구하는 중국은 모두 전략과 책략의 대국이다. 우리가 살아 남는 길은 뻔하다. 미국과 중국의 서로 다른 전략과 스타일을 이해하고 각각 거기에 합당한 대응책을 내놓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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