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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레지안들 불법판결에 화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유(共有)’의 철학은 단순히 ‘나도 공짜가 좋아’라는 식의 유아적 발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와레즈를 무작정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활동을 과도하게 탄압하면 비도적적 유통과 독점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서울지방법원은 홈페이지 제작 프로그램인 나모 웹에디터4.0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홈페이지에 링크 시킨 김 모씨에 대해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위반죄를 적용, 벌금 5백만원을 부과한다’고 판결했다. 또 담당 판사는 판결문에서 ‘김씨의 행위는 저작권 침해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드디어 정품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와레즈(공짜 내려받기) 사이트’에 대한 첫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어서 정보통신부는 와레즈 사이트에 대한 불법 판결을 계기로 집중적인 단속에 나섰고, 수많은 와레지안들은 인터넷에서 아예 모습을 감추거나 좀 더 비밀스러운 곳으로 거점을 옮기고 있는 추세다.

지적재산권은 공공성에 근거해 적용돼야

물론 일반 네티즌들은 매우 당황하고 있다. 수십 만원에 이르는 정품 소프트웨어를 와레즈 사이트를 통해 무상 사용해 왔는데, 이제 와서 그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자니 경제적으로도 너무 부담스럽고, 반면에 지금 상황에서 와레즈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계속 이용하자니 법적으로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판결과 정보통신부의 입장에 대한 찬반 논쟁도 뜨겁다. 와레즈 사이트의 불법성과 비도덕성을 비판하며 이번 판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네티즌들이 있는가 하면, 정보통신부 게시판을 항의 글로 도배하거나 와레즈 보호 사이트인 ‘잇바이’(http://www.itbye.com)에서 자구책을 위해 집단행동을 결의하자는 네티즌들도 많다.

사실 현행법의 근거를 가지고 접근한다면, 와레즈 사이트에 대한 불법 규정은 너무나 당연하다. 개인의 사적 소유와 경제적 권리의 보호를 우선 적용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서, 더욱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등장과 함께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지적재산권의 논리에서, 와레즈 사이트는 명확하게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사이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의 법적 근거와 지적재산권에 대한 자본주의적 집착을 조금 벗어난다면 이야기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먼저 현재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지적재산권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너무나도 많은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본래 지적재산권은 기술의 사회적 공유와 보편적 사용을 위해 고안된 제도다. 15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기술자들은 개인의 발명이나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기술을 철저하게 감추어 왔으며, 이 때문에 기술에 대한 사회적 공유와 발전은 지속적으로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국가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로서 일정 기간 동안 기술에 대한 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인정해주는 지적재산권 제도를 정착시킨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해와 적용에 있어 본래의 취지와는 정반대의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다. 기술과 정보에 대한 사회적 다수의 공유보다는 소수의 기업과 자본이 이를 사적으로 소유하고 이에 대한 권리를 독점할 수 있는 장치로 지적재산권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와레즈 사이트에 대해 ‘저작권 침해의 사실이 인정된다’는 판결문에서 사용된 ‘저작권’이라는 개념은 그 본래의 취지와 개념과는 달리, 사회적 공공성보다는 사적 재산권 보호를 우선한다는 가치 판단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범죄자인가?

다음으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오해는 바로 와레즈 사이트에 대한 ‘무임승차론’, 즉 ‘‘타인의 기술과 정보를 공짜로 사용하는 비도덕적 행위’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물론 타인의 노력을 아무런 노력 없이 ‘거저 가지려는’ 사고방식과 행위는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적재산권이 사회적 공유와 발전보다 개인의 사적재산권을 우선시하는 순간,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질서는 공동체적 문화보다는 배타적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타적 권리는 당연히 무임승차의 욕망을 강력하게 유혹한다.

즉 지적재산권이 사회적 공공성에 기반하지 않고 지금과 같이 돈과 권력의 소유를 위한 장치로 이해되고 적용되는 순간 배타적이고 비도덕적인 무임승차의 욕망도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의 경제적 이윤 창출에 기여하지 않는 정보 공유에 대해 배타적 지적재산권을 적용하려는 지금의 경향은 와레즈 사이트만의 문제를 넘어 오히려 비도덕적인 정보 유통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는 창작자를 보호해 정보와 기술의 사회적 공공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문화적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독점을 챙기려는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만을 전파할 것이다.

더욱이 소프트웨어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구체적 현실과 법적 근거간의 문화적 간극 역시 결코 간과될 수 없다. 이번 와레즈 사이트 판결대로 철저하게 현행법의 적용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아마도 컴퓨터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노인과 유아를 제외하고 한국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위반죄’로 상당액의 벌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공짜를 선호하는 개개인의 도덕과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품 소프트웨어 유통 가격의 비현실성과 소프트웨어산업의 관행적인 유통 구조의 딜레마다. 따라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번 판결은 그 선언적 의미는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해버리는 어이없는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와레즈 사이트 보호와 관련해 네티즌들이 주장하고 있는 ‘공유(共有)’의 철학은 단순히 ‘나도 공짜가 좋아’라는 식의 유아적 발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와레즈 사이트의 법적 판례를 넘어 현재 강화되고 있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또 다른 문제제기이며, 현실의 비현실적인 산업정책과 법적 근거에 대한 정직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와레즈 사이트를 무작정 옹호하자는 요구가 아니라 정보와 사회적 공공재에 대한 평등하고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을 보장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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