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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판 문혁에 재산 뺏겼다” … 억지 수사에 당한 기업인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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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충칭 난산 정상에 위치한 난산리징두자 호텔.

지난 9일 충칭(重慶)시 난산(南山) 정상의 난산리징두자(南山麗景度假) 호텔 정문 앞. 경찰 한 명이 배치돼 출입 차량 번호를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다. 호텔 안 로비에도 4명의 정복 경찰이 배치됐다. 호텔 뒤편 숲 속엔 경찰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순찰을 돌았다. 비밀 안가(安家)를 방불케 했다. 지난 2월 이래 권력 이양기의 중국을 뒤흔들고 있는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당 서기 실각의 진원지는 여전히 경계 모드 속에 있었다. 충칭시 소유의 이 호텔은 지난해 11월 보의 부인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독살한 곳이다. 이후 이 사건은 왕리쥔(王立軍) 당시 충칭시 공안국장의 수사→보 서기에 대한 보고→보 서기의 왕 국장 경질→왕 국장 미국 망명 시도→보 서기 면직과 정치국원 해임으로 이어졌다.

 충칭시 소유 호텔은 보 전 서기의 정치적 야망을 일군 근거지이자 몰락의 터였다. 충칭의 한 정보 소식통은 “보 전 서기는 재임 기간 ‘창훙다헤이’(昌紅打黑·혁명가요를 부르고 범죄조직을 소탕한다) 정책을 추진하면서 실적을 강요했다” “관련 조사는 비밀 유지를 위해 시 정부 소유의 호텔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 전서기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닌 당 총서기를 노렸고, 이를 위한 자금 확보와 지원세력 구축을 위해 비협조적인 기업인들을 철저히 제거했다”고 전했다.

 충칭시에선 기업인에 대한 ‘문화대혁명’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인사는 2010년 7월 충칭 힐튼호텔 사장이던 펑즈민(彭治民·50)에 대한 조사는 그 신호탄이었다고 전했다. 보 전 서기 측은 중졸 학력으로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어 충칭에서는 입지전 인물로 통하는 그를 제거해 기업인들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려 했다고 한다. 충칭시 공안당국은 펑에 대해 10여 차례 세무조사를 벌였으나 탈세 혐의를 찾지 못하자 호텔 지하에 있는 유흥업소를 겨냥했다. 펑은 합법적 절차를 거쳐 문을 연 업소라고 주장했지만 공안당국은 그가 조직폭력배와 연계돼 매춘을 조장했다며 구속했다고 한다.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다. 펑의 가족들은 지난해 항소하면서 “당국이 매년 수천만 위안의 기부금을 내도록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유흥업소를 빌미로 억지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억지 수사의 후유증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고문을 받은 기업인도 적지 않았다. 정보통신회사를 경영하는 한 기업인은 “부동산개발사 사장인 친구가 조폭 비호 혐의로 모 호텔로 끌려갔는데 수사관이 욕조에 소총을 놓고는 ‘지금부터 이 소총은 당신 것으로 조폭과 연계된 증거’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기업인은 결국 물고문 끝에 경찰이 제시한 혐의를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1년형을 받고 지난달 출소했다. 이런 식으로 3년여 동안 충칭의 기업인 500여 명이 조사를 받았고 이 중 100여 명이 구속됐다.

 지난 3월 보 서기가 면직된 이후에는 유언비어 단속을 이유로 내·외국인 주요 인사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엔 한국인 프리랜서가 충칭시 안전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한국 주요 기업인과 보 전 서기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던 한국 외교관과의 관계에 대해 강도 높게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보 전 서기 몰락은 중국 기업은 물론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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