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투자社 철저한 상업적 운용 보장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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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통한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한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Corporate Restructuring Vehicle) 설립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재정경제부가 CRV 설립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할 당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기업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 구조조정 제도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정부와 금융기관이 주도하던 구조조정에 시장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CRV 설립에 관한 법률은 지난해 10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까지 1호 CRV는 등장하지 않았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까지는 은행들이 경영개선계획 등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면서 "현재 은행들이 CRV 설립을 위한 자율협약을 만들고 있는 만큼 다음달께 첫번째 CRV가 탄생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권의 반응은 다르다. 한빛은행 관계자는 "일부에서 2~3월이면 최초의 CRV가 탄생할 것이라고 하지만 은행끼리 분쟁조정 방법 등 합의해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에 이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는 "CRV가 정착되려면 투자자 유치가 가장 중요하다" 면서 "하지만 지금 워크아웃 대상기업 가운데 투자자에게 매력이 있는 기업이 있느냐가 가장 큰 고민" 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구조조정 전문가들의 반응은 더 차갑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투자기관의 임원은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운용되지 않는 CRV는 의미가 없다" 고 주장했다.

그는 "워크아웃 기업을 살리려는 목적으로만 CRV가 운용된다면 기존 부도유예 협약이나 워크아웃 제도와 별로 다르지 않다" 고 강조했다.

가령 워크아웃 회사가 향후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공장 문을 닫고 기계는 기계대로, 부동산은 부동산대로 팔아치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기술투자 전은우 부장은 "기업구조조정은 기업 정상화로 높은 투자수익을 노리는 투자가에 의해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며 "지금처럼 은행권이 CRV를 주도할 경우 경험 부족이 문제며, 정치적 영향을 받기도 쉬운 데다 기업 정상화보다 채권 보전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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