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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저축은행의 배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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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승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

부산저축은행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4개 저축은행에 대한 6개월 영업정지조치가 내려졌다. 간판급 저축은행까지 포함되어 더 충격적이다. 지난 17개월 동안의 구조조정 결과를 보면 중앙일보의 기사 제목에서처럼 정말 “대마필사(大馬必死)”의 상황이다.

 저축은행의 부실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제시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다. 부동산 경기가 한창일 때 PF는 샘솟는 이익의 원천처럼 여겨졌다. 수많은 금융위기의 역사가 가르쳐준 ‘이익 있는 곳에는 위험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정부 역시 소위 8·8(BIS 비율 8% 이상, 고정여신이하비율 8% 이하)클럽에는 남은 규제마저 풀어주었다. 그런데 밤새 계속될 것 같던 파티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이내 끝나버리고 말았다.

 저축은행들은 ‘위험의 관리’라는 금융업의 금도조차 어기면서 무리한 이익추구를 해왔다. 그리고 부실이 발생하자 돌려막기와 증액대출 등으로 고객을 속였다. 공시제도는 무기력했다. 저축은행 회장의 밀항 소동은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허탈하게 한다. 또 다른 저축은행에서는 계열사를 파산시키고 일부 자금을 빼돌렸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경영의 실패를 넘어선 도덕적 해이가 극대화된 모습이다.

 감독 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거 부실저축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저축은행들의 무리한 대형화를 용인하거나 유도했다. 각종 규제완화를 통해 부실의 토양을 제공했으며,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시장을 감시해야 하는 워치독(watch-dog)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감독 당국은 이제라도 제대로 된 정책을 보여주어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막고 시장의 불안을 제거해야 한다. 이번 4개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겨우 생사의 선을 넘어선 저축은행들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저축은행의 기능, 규모, 대주주 및 경영진의 자격요건 등 전반에 걸친 진단과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금융소비자들이 후순위채와 같은 위험자산에 아무런 정보 없이 투자하는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 등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후속조치들이 철저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저축은행이 부실화되었기 때문에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저축은행의 PF 부실은 소화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섭생한 탓으로 병이 난 경우다. 따라서 체질개선이 문제이지 DTI 규제완화는 답이 아니다. 더구나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유럽발 재정위기의 끝 역시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지 않는가.

 금융은 신뢰의 산업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통적인 복장은 흰색 와이셔츠에 감색 또는 짙은 회색 양복이다. 그 색의 조합이 보는 이들에게 가장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물며 경영에 있어서 고객과 시장의 신뢰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는 이번에 저축은행의 배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러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믿어주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을 겪게 되어 국민들은 더욱 상처가 크다. 정부에 대한 신뢰까지 함께 무너지고 있다. 정책의 실패뿐 아니라 또다시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공적자금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선 저축은행 스스로와 정부 당국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다시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최승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