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아니라는 이정희, 멈칫멈칫 유시민, 강경한 심상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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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심상정·이정희·유시민 공동대표(왼쪽부터)가 3일 국회에서 열린 대표단회의에서 19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 파문에 대한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3일 오전 9시. 국회 본청 213호실.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이 불거진 후 처음으로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맨 먼저 이정희(43) 대표가 들어섰다. 이어 유시민(53)·심상정(53)·조준호(54) 대표가 차례로 입장했다. 이 순서는 당내 지분 비율을 그대로 반영한다. 민노당 출신 이 대표는 55%, 국민참여당 출신 유 대표는 30%, 진보신당 출신 심 대표는 15% 지분의 주주다. 이·유·심 대표는 모두 “당원과 국민들께 사죄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 임하는 태도와 말 속의 강조점은 3인3색이었다.

김정욱 기자

이정희 말말말

▶선관위 홈피 공격 땐 “오싹한 기분, 이들에게 민주주의 기대해선 안 돼”(2011년 12월)

▶박희태 돈봉투 땐 “이런 분이 국회의장, 입법부 수치”(2012년 1월)

▶통합진보당 관악을 부정 경선 땐 “선대본부 차원이 아닌 보좌관의 과욕 ”(2012년 3월 )

▶이번 비례경선 부정엔 “아직 백지 상태, 알지 못한다”(2012년 5월 3일)


이정희 “이 정도 조사로는 단정 못 해”

당권파의 핵심으로 거센 사퇴 압력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정희 대표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들을 향해 “많이 오셨네요. 평소에도 많이 좀 와 주시지…” 하면서 웃었다.

그는 “이번 일로 국민과 당원들께 큰 실망을 드렸다”며 “가장 무거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이어 “화합과 단결로 통합진보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언 도중 한두 차례 감정에 복받친 듯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비례대표 경선에 대해 ‘부정’ 대신 ‘부실’이란 말을 썼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의 ‘총체적 부정선거’라는 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이 대표는 특히 “나 역시 어떤 경선 후보자들에게 어떤 부정의 결과가 담긴 표가 주어졌는지 백지상태로 전혀 알지 못한다”며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이 대표 측은 이날 오후 대표단 회의 결정에 따라 조사 보고서가 공개된 후에도 “이 정도 조사로는 부정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 보다 정밀한 2차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이날 공개 회견 중 유시민 대표가 “이 대표에게 사퇴하라고 한 일이 없다”고 하자 곧바로 “맞다. 확인해 드릴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당권파의 패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유시민 “이정희 사퇴 요구한 적 없어”
“조금만 더 지켜봐달라”

유시민 대표는 이정희 대표와 심상정 대표의 중간쯤에 서 있다. 진상조사위의 발표가 과장됐다는 당권파, 그리고 대표단과 비례대표 상위 순번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비(非)당권파 사이에서 시간을 조금 더 갖고 검토해 보자는 입장을 취했다. 일각에선 이를 속도 조절로 해석한다.

 그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했든 상관없이 당에서 한 일에 대해 사죄드린다”며 운을 뗀 뒤 “대표단이 모든 면에서 생각이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함께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이 대표에게 사퇴하라고 했다거나 서로 싸웠다고 보도됐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유 대표는 그러면서 “이번 일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120% 받아들이면서도 책임 있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조금만 더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당 쇄신 수위에 대한 정파 간 절충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권파와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그는 “공동대표 간 합의에 따라 진상조사위가 꾸려지고 조준호 위원장에게 전권을 준 것”이라고 말한 뒤 이 대표를 겨냥해 “공동대표니까 당연히 진상조사위의 결과를 신뢰하고 존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이어 “밝힐 것은 밝히고, 고칠 것은 고치는 게 제대로 책임지는 행동”이라며 “공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표정 굳은 심상정 “비대위 만들자”
당권파 패권 저지 나서

심상정 대표는 이날 회견 중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이정희·유시민 대표와 달리 시종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세 사람 중 가장 강한 어조로 비례대표 부정 선거에 대한 자괴감을 표시했다.

 그는 우선 ‘총체적 부정선거’라는 당 진상조사위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로 15년간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힘겹게 싸운 진보당의 신뢰 기반이 무너졌다”며 “국민 여러분께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어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당을 분명하게 쇄신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는 대표단의 공동책임이 당연하며, 그 누구도 자리에 연연하거나 책임을 회피할 마음이 1%도 없다”면서 “필요하다면 비상대책위 구성을 포함해 대중적 진보정당이 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의 수습책으로 대표단 총사퇴와 비대위 구성, 이를 통한 현 당권파의 패권 저지를 공개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사태 파악’이 먼저라는 이정희 대표의 주장과 다른 점이다.

 심 대표는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드러내고 매를 청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재창당의 각오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진보신당 출신으로 노회찬 대변인과 함께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심 대표가 이 같은 입장을 고수할 경우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당권파의 방어 전략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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