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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마비 환자, 9년만에 상반신이…'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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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98년 교통사고로 사지마비에 빠졌던 박모씨가 서울아산병원 전상용 교수 앞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박모(49)씨는 1998년 11월 10일 승용차를 몰고 낚시를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의식은 돌아왔으나 목 아래쪽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냄새도 맡을 수 없었고 손가락은 까닥까닥만 가능했다.

 그 후 8년간 재활치료와 중국에서 침 치료도 받았으나 절망적이었다. 팔을 어깨 높이까지 올리는 데도 온 힘을 쏟아야 했다.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박씨는 2006년 10월 “사지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줄기세포 치료 임상연구에 참여할 것”을 권하는 서울아산병원 전상용(신경외과) 교수에게 운명을 맡겼다.

 그는 자신의 줄기세포를 채취해 수를 4800만 개로 늘린 뒤 다시 손상된 척수 부위에 주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전신마취 수술은 7시간 가까이 걸렸다. 퇴원 뒤 그는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병원에 가서 허리에 구멍을 뚫어 각각 5000만 개의 줄기세포를 주입 받았다. 줄기세포 치료는 수술→허리 천자(穿刺·구멍을 뚫음, 한 달 뒤)→허리 천자(두 달 뒤)로 끝났다.

 치료 효과는 수술 이틀 뒤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씨는 “척추 마비 환자는 28도에서도 추위를 심하게 타서 난로를 켜야 하는데 수술 이틀 뒤 밤엔 더워서 이불을 치워 달라고 했다”며 “퇴원하고 일주일쯤 지나 양치질을 하려는데 치약 냄새가 꽃향기처럼 나서 감격했다”고 말했다.

 상반신 감각은 2007년부터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두 팔을 위로도 쭉 뻗어 만세 동작을 힘들지 않게 한다. 휴대전화로 문자나 카카오톡을 보내는 일도 가능해졌다. 박씨는 “휠체어로 2∼3㎞는 이동할 수 있게 돼 팔 굵기도 몇 년 전보다 확실히 굵어졌다”며 “수저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고 와인이 가득 든 잔도 들 수 있게 된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체는 여전히 마비상태다. 그는 “다리 감각을 살릴 수 있는 줄기세포 치료가 나온다면 먼저 받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전상용 교수팀은 “목뼈를 다친 만성 척수 손상 환자 10명에게 자가(自家·환자 본인의 것) 골수 중간엽 줄기세포를 손상된 척수 부위에 직접 주입해 장기간 추적 관찰한 결과 10명 중 3명에게서 몸이 좋아지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사지마비 환자에 대한 줄기세포 치료의 효과가 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은 세계 처음으로 미국신경외과학회의 ‘뉴로서저리(Neurosurgery)’ 5월호에 소개됐다. 전 교수는 “사지마비 환자에 대한 줄기세포의 치료 효율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며 “ 유전자 변형 기술을 도입하는 등 치료의 힘이 더 강한 줄기세포를 얻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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