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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아이의 상처를 어찌할까요?" 매 들었던 엄마들의 안타까운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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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지난 월요일 오후였다. 60대 후반이라는 독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품위 있고 단정한 어조의 노신사였다. 그는 “칼럼을 잘 읽었다. 얘기를 좀 하고 싶다”고 했다. 그날 칼럼은 내 경험을 들어, 부모가 자식에게 가하는 폭력과 폭언의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노신사는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어제 일인 양 털어놨다. 절절하고 구체적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까지 하셨을까’를 이해 못해 지금도 괴롭다고 했다. 고통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실은 칼럼에 대한 반응의 다수를 차지한 것이야말로 바로 그 가해자 격인 엄마들의 토로였다. 메일로, 전화로, 트위터로 그녀들은 고백했다. “내 아이에게만은 상처 주기 싫었다. 한데 저도 몰래 손을 대고 저주를 퍼붓고 있더라.”

그 중 한 주부는 매를 든 적은 많지 않으나 말로 상처를 많이 준 듯 하다며 속상해 했다. ‘죄책감이 들어도 멈추어지지 않더군요. 부모 교육용 TV프로그램을 보며 다짐하고 교회 가서 기도도 했지만 화가 나면 제어가 잘 안 됩니다.'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아이의 자존감을 멍들 게 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 했다.아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까 두렵다는 것이었다.

저도 몰래 가해자 대열에 선 여성들의 고통과 죄책감은 무거웠다. 한데 이런 자기 성찰이야말로 폭력의 고리를 끊는 첫걸음일 것이었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공격자 동일시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을 공격하는 이를 증오하면서도 어느새 그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자기 상태를 아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변명거리 삼아선 안 된다. 하 교수는 “부모가 아이를 괴롭히는 건 마치 목욕탕 수챗구멍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 자기 삶의 불만족을 가장 약한 고리인 아이에게 쏟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찬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그런 만큼 아이를 꾸짖을 땐 자신의 환상을 투영해 자녀의 전(全) 인격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 행동 하나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를 드는 대신 아이 스스로 배상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방을 어질렀으면 그날 집 청소를 맡기는 식이다. 김 전문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잊지 않았다. “사실 정말 심각한 가정폭력은 아버지에 의해 일어난다. 어머니 또한 그 희생자인 경우가 많다.” 반성하는 어머니는 많지만 그런 아버지는 드물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문제를 엄마의 각성, 부모의 회심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다.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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