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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사진에 묻어나는 작가의 모습 … 난 후대에 어떻게 기억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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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2년 4월 25일자 34면. 스물두 살 ‘새댁’ 박완서 선생(왼쪽)과 시어머니.

한 사람의 진면목은 사소한 데서 나타나곤 합니다. 겉옷을 벗어둔 모양,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식탁의 모습, 간단한 낙서 한 줄, 당황할 때 튀어나오는 말 습관 같은 데서 말이에요. 요즘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남긴 100여 글자에 인격이 묻어난다고 하잖아요. 평소 예의 바르게 행동하던 사람의 트위터에 우연히 들어가봤더니 온통 ‘짜증나’ ‘너나 잘해’ 같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문구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어? 이게 뭐지?”하며 “이 사람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잖아요.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해요. 내가 어느 날 사라진 뒤 내 가족과 친구들이 나의 흔적을 살펴본다면? 여러분이 없는 동안 일기·노트·연습장을 가족과 친구들이 들춰본다면 어떨 것 같아요? 우리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켜고 자주 들어가던 사이트도 찾아볼 수 있겠죠. 그 흔적들을 보면서 내 가족과 친구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추억할까요? 정말 반듯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할지, 아니면 ‘착한 줄 알았더니 이건 반전인데’하며 고개를 저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지난해 작고하신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유품 전시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에요. 이번 전시회에는 문인 동료에게 남긴 편지, 자녀에게 남긴 메모지까지 공개된다고 해요. 선생이 평소 입었던 옷과 사용했던 그릇, 재봉틀 같은 생활 용품도 전시되고요. 대외적으로 발표하기 위해 썼던 문학 작품이 아니라 사적으로 남긴 글들이 공개되는 만큼 선생의 품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사에도 선생이 남긴 메모의 몇몇 내용이 공개돼 있는데요. 이를 테면 외아들과 남편을 차례로 잃은 뒤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편지 내용 같은 것들이에요.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 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수녀님이 가까이 계시어 분도수녀원으로 저를 인도해주신 것은 그래도 살아보라는 하느님이 뜻이 아니었을까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녀님 감사합니다’ 같은 글귀들이지요. 또 1970년대 중반에 둘째 딸 호원순씨에게 남긴 메모에는 엄마의 모습이 담뿍 묻어 있어요. ‘싸우지 말고 케이크 나눠 먹어라’ ‘국 팔팔 끓거든 수제비 넣어라’는 글을 보니 일상생활에서 따뜻한 엄마인 선생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기사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좋은 흔적을 남기려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따뜻하게 대하면 되겠구나 싶어요. 여러분도 지금까지 여러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했을 겁니다. ‘지난해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떠올려 보세요. 그들에게 좋은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면, 그 아쉬움만큼 지금 우리 반 친구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길 바랍니다. 마주칠 때면 웃어주고 힘들어 보이는 친구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쪽지 한 장을 건네보면 됩니다. 이런 작은 행동이 쌓이면 다른 반이 된 뒤에도 많은 친구들이 여러분을 ‘다정한 사람’으로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심미향 숭의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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