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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극복, 대륙적 상상력의 출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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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꿈은 시의 연료다. 꿈이 소진되면 시도 멈춘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고은(79·사진) 시인이 꿈꾸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팔순을 바라보는 시인에겐 어떤 꿈이 가장 절실할까. 그것은 분단 국가의 참혹한 운명을 체험한 시인으로서의 필연적 꿈, ‘대륙적 상상력’이다.

 “우리의 공간은 휴전선에서 끝납니다. 우리의 상상은 멀리 있어도 숨막히는 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지요. 제 꿈은 휴전선을 부수고 그 위의 유라시아 대륙, 비정치적인 무한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 시인은 “대륙적 상상력의 날개를 펴기 위해선 우리나라를 가로막고 있는 휴전선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소설가 김형수(53)씨와 가진 대담에서다. ‘대륙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열린 이날 대담은 김씨의 장편소설?『조드-가난한 성자들』?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이 소설은 칭기즈칸을 중심으로 혹독한 삶을 개척해 가는 중세 유목민의 모습에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는 소설이다. 고시인은 “소설 ‘조드’의 독법(讀法)은 칭기즈칸 직전 아시아 자연 환경의 위대함을 우리가 감상하는 것과 그것을 자기화시켜 당대의 문제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역사에서 대륙적 기상을 가진 세력이 여러 번 패배했습니다. 대륙으로 가려는 정치적 이유는 국내 정치 현상의 협소성을 극복하고 자유를 소유하려는 것입니다.”

 고 시인은 ‘대륙적 상상력’의 핵심으로 ‘이동’과 ‘공간’을 꼽았다. 그는 “이동을 통해 대륙이 만들어졌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관 속에 있으나 지평선이 있으나 상관이 없다. 이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갈 때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대륙으로 이동해 왔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생명은 ‘이동 DNA’를 품고 있지요. 공간이 있으면 인간이 한계를 넘어자기를 타자화할 수가 있습니다.”

 이날 대담에서 고 시인은 대륙적 상상력을 통해 잃어버린 대륙을 되찾을 것을 거듭 주문했다. “우리가 몽골반점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곧 잃어버리고 마는 것처럼 (우리의 상상력이) 대륙을 가졌지만 소진해버렸다. 그러나 우리 유전자는 아직도 대륙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 고 강조했다.

 “내가 상상을 안 하면 현실이 있거나 말거나 의미가 없습니다. 상상이 먼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륙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이니까. 목이 마르지 않습니까. 어디론가 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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