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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부패 스캔들,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중국 상층부 권력을 형성하는 공산당 정치국 25인의 멤버 중 하나였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몰락을 지켜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우선 중국 정치가 어떤 의사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는지를 제법 자세하게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세계적 흥밋거리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보시라이가 쌓은 부패의 성(城)이 얼마나 견고하고 높은지에 더 관심이 갔다. 그는 공산당 혁명원로 보이보(薄一波)의 아들이다. 고관의 자제들을 일컫는 이른바 ‘태자당(太子黨)’ 일원으로,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중국 최고 권력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에 발을 들여놓기 일보 전에 낙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외신을 타고 전해지는 소식이 장난이 아니다. 해외 도피 자산의 규모가 한화로 1조2000억원 정도라는 보도는 오히려 약과다. 일부에서는 그 규모가 7조원에 가까우리라는 보도도 나왔다.

어떻게 쌓았을까. 여러 후속 보도가 나오고 있으나, 그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의 막무가내식 이권 개입과 거의 수족(手足)처럼 부렸던 대기업 회장의 충성, 막료(幕僚) 그룹의 발호 등이 그의 축재 과정에서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패에 관한 그의 공력(功力)이 특별히 뛰어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십분 활용한 경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내공으로 ‘먹고 튀는’ 관료가 많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어, 탐관오리(貪官汚吏)의 그림자가 늘 어른거리는 곳이 중국이다.

요즘 들어서는 ‘홀딱 벗고 튄다’는 뜻에서 ‘나관(裸官)’이라고 부르는 탐관오리가 성행한다고 한다. 그들은 들비둘기의 속성을 지녔는데 아무것이나 주워 먹고, 때가 오면 자유롭게 날아오른다는 점에서 그렇단다. 중국에서 공무원으로 버젓이 행세하며 닥치는 대로 ‘모이’를 주워 먹다가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이 생기면 해외로 줄행랑을 친다는 얘기다.

관료는 관료끼리 서로 뒤를 봐준다는 ‘관관상호(官官相護)’, 기업인과 공무원들이 거래해 돈을 챙긴다는 ‘금권교역(金權交易)’은 옛말이다. 돈을 밝히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많은 여인을 정부(情婦)로 거느린 색관(色官)이 도처에 넘친다는 보도도 나왔다.

결국 해외로 튀는 모든 관료에게는 ‘도관(逃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사회과학원 통계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래 지금까지 공산당과 공안(公安) 및 사법(司法)기관의 간부, 국영기업 고위층 인사, 해외 주재 투자기관원을 포함해 재산을 챙겨 해외로 빠져나간 사람은 1만8000여 명이다. 그 해외도피 재산 규모는 모두 8000억 위안(약 13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 부패의 사슬이 전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중국 민간에서는 “촌장(村長·중국 최하위 행정단위)에서부터 중앙정부까지 한 단계씩 올라가며 해당 간부들을 총살해야 억울한 일(寃案) 발생률이 5% 이내에 멈출 것”이라는 말이 생겼고, 지금도 여전히 쓰인다. 이쯤이면 부패 공화국으로 불러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매우 유감이지만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른바 ‘영포(영일-포항) 라인’ ‘구룡포 동문회’가 펼치는 권력형 부패 드라마를 지켜보는 중이다. ‘끼리끼리 모여서 찜 쪄 먹는’ 모습이 중국의 탐관과 오리들이 벌이는 활극과 무엇이 다를까. 고리와 영광 원자력발전소 부품 비리에 대학가 부정도 최근의 뉴스 흐름 속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자고 나면 또 터지는 비리 사건에 한국 사회도 편안하지 않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웃에서 벌어진 잘못된 일을 교훈으로 삼자는 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성어의 취지다. 중국은 우리에게 다른 산에 있는 돌멩이만으로 볼 대상이 아니다. 그 산에 있는 돌멩이는 우리 사회 깊숙이 박힌 돌멩이와 동질(同質)에다가 균질(均質)의 것이다.

경제만 잘나가는 중국, 법과 제도는 뒤떨어진 중국이라는 통념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정비됐다는 한국 사회에서도 공직자 부패는 하염없이 이어지고 있다. 보시라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깊어지는 생각이다. 강 건너에 번진 불을 구경하다가 돌아오니 제 집이 불에 타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그 불은 어느덧 옷에 옮겨붙은 상황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부패 문제도 국가 존망 차원에서 한 번 깊이 다뤄 볼 사안이다.

유광종 국제지식 에디터 kj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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