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축구전] "일본 꺾고 자존심 세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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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아, 너는 패스한 다음 빨리 공간을 확보해야지 그대로 서 있으면 안되잖아. "

작전판을 들고 있는 박항서 수석코치의 지시가 부드럽고도 간곡하다. 14일로 전지훈련 나흘째. 오는 20일 한.일 정기전을 앞두고 울산에 전훈 캠프를 차린 국가대표 축구팀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돈다.

전임 허정무 감독 시절에 비하면 훨씬 부드러워진 코칭스태프지만 선수들이 느끼는 훈련 분위기는 결코 그렇지 않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골키퍼 자리를 놓고 다투는 김병지(울산 현대)와 이운재(상무)는 서로 의식하지 않는 것 같지만 미묘한 경쟁심리를 드러낸다.

자신이 나서서 골문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스타팅으로 나서겠지요" 라고 말하면서도 서로 자신의 컨디션이 최상임을 증명하기 위해 굵은 땀을 뚝뚝 흘리며 훈련에 열중이다.

기억에도 생생한 1997년 9월 '도쿄 대첩' 동점골과 역전골의 주인공 서정원(수원 삼성).이민성(상무)은 "최근 가라앉은 한국 축구의 분위기를 살려내기 위해 무조건 이길 겁니다" 고 다짐한다.

국민의 기대가 남다른 만큼 한.일전에서는 선수들의 의지와 집중력이 살아날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듯하다.

허정무 감독이 물러나고 신임 히딩크 감독이 지켜볼 한.일전에 나서는 선수들은 이처럼 강한 기(氣)를 내뿜고 있다. 새 감독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뭉쳐 있다.

박항서 코치는 "올림픽과 아시안컵 당시의 전략.전술을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 일본의 장.단점을 파악해 적절히 대처하겠다" 고 조심스런 출사표를 던졌다. 박코치는 안정환(페루자)이 합류해 크게 고무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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