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00 문화계 결산] 방송

중앙일보

입력

"TV의 폭력성, 선정성을 장관직을 걸고 추방하겠다"

맥락이야 어찌됐건 지난 8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의 발언은 한햇동안 방송계 흐름을 이해하는 단초를 여럿 제공한다.

특히 '선정성' 은 올해 방송가의 키워드로 꼽을 만한 부분. 박 전 장관이 지적한 것은 버라이어티쇼의 경쟁적인 과다 노출 등이었지만, 시청자단체들은 선정성이 이미 단순한 오락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선정성과 관련, 올해 두드러지게 부각된 것은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치열한 경쟁. SBS '한밤의 TV연예' 가 MBC '섹션TV 연예통신' 에 맞서기 위해 주2회 연속방송이라는 공격적 편성을 내놓았는가 하면, 아침뉴스 등 보도물에까지 연예정보 코너가 확산됐다.

이들 프로는 '전파낭비' 라는 비난의 와중에도 시청률경쟁을 의식, 갈수록 공격적인 취재방식을 도입하면서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알맹이없이 끝난 '연예인 매춘' 보도와 연기자 노조의 갈등, 백지영 비디오 보도와 관련 여성단체가 연예정보프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일 등은 그같은 논란의 예다.

'연예저널리즘' 을 내건 지상파 3사의 연예정보 프로그램들은 이른바 '사건현장' 에는 발빠르게 접근했지만, 여론선도에는 크게 뒤처졌다.

백지영 비디오 파문을 본 시청자들은 사생활 보호의 중요성에 한층 비중을 두는 등 이른바 'O양 비디오' 사건때와 사뭇 달라진 여론을 형성했다.

탤런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 역시 이내 '방송퇴출' 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면서 달라진 여론을 가늠케했다.

앞서 박 전 장관의 발언이 '월권 아니냐' 는 논란을 빚은 점도 올해 방송계의 구조적 변화와 관련이 깊다.

지난 3월 새 방송법의 시행과 함께 방송관련 주요업무의 주체가 과거 문화관광부에서 방송위원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출범 초기 다소 허약하게 비쳤던 방송위원회의 위상 문제는 위성방송 사업자 선정.프로그램 등급제 실시 등 굵직한 현안을 집행하면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숙제로 보인다.

선정성을 비롯한 방송계 전반의 문제 역시 이제는 방송위원회가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할 상황이다.

EBS의 공사 출범도 중요한 구조적 변화다. EBS는 연초 철학자 김용옥씨의 노자강연을 기획, 인문학 교양강의도 TV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남다른 기획의 힘은 드라마에서도 돋보였다. 방송 초기 부진한 시청률을 보였던 MBC '허준' , KBS '태조 왕건' 등은 결국 시청률 정상에 올라 장기간 공들인 기획의 힘을 방송계 안팎에 확인시켰다.

'허준' 은 역대 4위인 최고 63.8%의 시청률을 기록, KBS '왕과 비' 와 함께 시들했던 사극에 새 인기를 불러일으켰고, '감축드립니다' 등 유행어를 낳았다.

북한 억양의 '반갑습니다' 가 유행된 데도 방송의 힘이 컸다. 지난 6월 남북정상의 감격적 만남을 시청자들이 지켜본 것도 방송사들의 공동 생중계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3사의 협력분위기는 최근의 스포츠중계권 다툼을 계기로 급랭했다.

MBC가 메이저리그 독점중계권을 계약하면서 '위성방송용 컨텐츠 확보' 를 명분으로 내건 데서 보듯, 지상파 방송사의 경쟁무대는 이제 위성.케이블 등 뉴미디어시장으로 넓어지고 있다.

케이블 신규채널 10여개가 개국했고, 방송3사가 디지털시험방송을 시작한 올해에 이어 위성방송이 첫선을 뵈는 내년에는 이같은 변화가 한층 일반 시청자의 가시권에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