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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이기는 기업들] 4. 구조조정 노사가 함께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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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차 퇴출기업 명단을 발표할 무렵인 지난달 초 퇴출대상 기업의 직원들은 감원 공포에 떨었지만 전남 영암군 삼호중공업 직원들은 직장을 떠났던 옛 동료 1백명을 맞느라고 바빴다.

현대중공업의 위탁경영과 조선 경기의 호조로 일감이 늘어난 이 회사는 숙련공이 필요하자 '퇴직자 리콜제' 를 실시했다.

3년 전 강제 퇴직시켰던 근로자들을 회사가 다시 불렀다. 어려울 때 인원을 감축해 인건비를 절감한 덕분에 회사가 되살아나자 퇴직자를 다시 고용한 것이다.

◇ 노사 합의로 감원〓한보철강과 함께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몰렸던 기아자동차가 지난해 1천8백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1997년 7월 부도 당시 기아차의 임직원은 4만5천명.

현대차가 인수할 때 33%인 1만5천명이 노사 합의로 회사를 떠났다.

회사와 노조는 단체협약을 개정해 ▶노사 동수의 징계위원회를 폐지하고▶노사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전보.파견 등 생산직 사원에 대한 인사권을 회사에 돌려주었다. 지난해 3월 기아차 노조는 노사화합 선언을 통해 무분규로 회사 정상화에 동참했다.

한라건설은 97년 말 부도가 나자 1천명의 직원 중 4백51명이 떠났다. 당시 감원 대상 직원의 사직서를 받은 곳은 회사가 아니라 노조였다.

김홍두 부사장은 "회사 경영상황을 낱낱이 솔직하게 공개하고 당시 인력규모로는 회사를 살릴 수 없다는 점을 노조에 알렸다" 고 말했다.

한화그룹이 두번째 협조융자를 받았던 98년 2월. ㈜한화 화약부문 인천공장 임직원들은 '위기 극복에 적극 동참하겠다' 는 내용의 편지를 김승연 회장에게 보냈다.

그 뒤 ㈜한화는 5천여명의 직원 중 9백80여명을 명예퇴직 등으로 감원했다. 한화는 지난해 9월 협조융자 6천5백억원을 모두 갚고 정상화됐다.

◇ 어쩔 수 없었던 대량 감원〓삼호중공업은 환란 직후인 97년 12월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일감이 줄었다.

54척이었던 수주 잔량 가운데 20여척의 선주들이 발주를 취소했다. 수주량이 줄어들자 99년에는 가동률이 40%대로 떨어졌다. 잉여인력이 많아지자 회사는 명예퇴직제를 도입했는데 노조가 반대했다.

결국 일년치 급여만큼 위로금을 주고 2천8백여명을 정리했다. 그 뒤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에 나섰고, 채권단이 부채를 줄여주면서 회사경영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2003년 상반기까지의 일감을 갖고 있다.

김종두 과장은 "조선경기가 좋아진 덕도 보았지만 임직원들이 회사를 살려보자는 의지가 회생의 원동력이 됐다" 고 말했다.

그러나 양현주 노조 부위원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들을 희망퇴직시킨 뒤 새로 채용하면서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면서 "회사는 좋아졌지만 비정규직의 어려운 근로여건이 문제" 라고 말했다.

삼호중공업은 내년에 1백억원의 흑자를 예상하고 있다. 삼호중공업은 앞으로도 2백여명의 전직 사원들을 재고용할 계획이다.

◇ 노조에 신뢰 심어준 전환배치.고용승계〓96년 12월 구조조정을 추진하던 두산은 그룹의 발원지인 OB맥주 영등포공장을 폐쇄했다. 당시 3백명의 직원을 경기 이천.전남 광주공장에 배치했다.

이때 본인의 의사에 따라 연고지를 떠나서는 직장생활을 할 수 없다는 10여명만 사표를 냈다.

두산 홍종길 차장은 "5년동안 구조조정을 해오면서 노사간 마찰이 없었던 것은 전환배치와 고용승계를 통해 직장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기 때문" 이라면서 "외국사와 지분.공장매각 협상을 하면서 고용 승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고 말했다.

두산은 97년 음료사업을 코카콜라에 매각하면서도 2천여명 직원 모두의 일자리를 승계시켰다.

한화그룹은 99년 4월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에 팔 때 생산현장에서 동요가 있었는데 노조가 나서서 불가피성을 설득했다.

한화 정이만 상무는 "빚을 갚은 뒤 위기탈출의 공을 임직원에게 돌린다는 의미에서 전 직원에게 특별 격려금을 지급했다" 며 노사간 신뢰를 강조했다.

◇ 노사화합으로 감원없이 재기〓생활도자기 업체인 행남자기는 노조가 설립된 지 40여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노사분규가 없었다.

IMF 관리체제 아래 경영이 어려워지자 목포의 4개 공장을 2개로 통합하면서 9백여명의 직원 중 3백여명의 잉여인력이 생겼다.

회사는 감원 없이 급여를 지급하고 순환교육을 시켰다.

이병건 팀장은 "여건이 나아지면 숙련된 직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출혈을 감수하고 재교육을 시켰다" 면서 "수입에 의존해온 자동성형기, 라이벡가마 등을 자체 개발해 1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둔 것도 재교육과 직원 의견을 존중하는 노사화합의 산물" 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억원의 적자를 낸 이 회사는 올해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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