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아름다움 〈소년과 흰기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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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화해하는 역사적인 현실 가운데에서도 모연예인의 커밍아웃은 시사토론의 쟁점으로까지 부각이 되며, 섹시한 여가수의 섹시한 일상은 연일 각종매체를 석권하고 있다. 한해의 마무리가 시작되는 이 무렵엔 '연예계 10대 뉴스' 같은 자극적인 종합 선물 보단 지친 마음을 보듬어줄 시나 그림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왜곡과 과장이 필수양념인 연예계의 뉴스 아닌 뉴스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이다. '공존'이란 너무도 고고하고 세련된 것일까?

NFBC의 대표적인 애니메이터인 게일 토마스는 한편의 동시처럼 따스한 여운을 남기는 'The Boy & The Snow Goose'을 통해서 공존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을 날리는 어린아이들... 다양한 모양의 예쁜 연들이 바람을 타고 신나게 날고 있는 하늘위로 기러기 우는소리가 들려 온다.

아이들가운데 한 명인 -볼이 빨간^^- 소년이 덤불을 헤치자 그 속엔 상처를 입고 쓰러진 기러기 한 마리가 있다. 아이들은 이 기러기를 막대기로 찌르고 돌로 치는 폭력아동의 막강함을 보여주지만, 주인공인 착한 소년은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무찌른다(?).

소년의 선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겁에 질린 기러기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집에 데려와 상처를 치료해준다. 소년에게 마음을 열고 회복되기 시작한 기러기는 소년과 친한 친구가 된다. 해변에 모래성도 쌓고 낚시질도 함께 하고 보트놀이와 수영도 함께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어느덧 겨울이 다시 오고, 철새의 정체성을 되찾은 기러기는 멀리 따뜻한 남쪽 나라로 동료 기러기들을 쫓아 훌쩍 떠나 버린다.

혼자 남게 된 소년은 기러기를 그리워하며 무지개 빛 꿈을 꾼다. 그러나 꿈은 꿈으로 사라지고, 소년은 아이들과 함께 다시 연을 날리러 들판으로 나온다. 그런데 저쪽 하늘에서 기러기 떼가 날아오고, 소년은 자신이 구해주었던 기러기와 반가운 재회를 한다.

하지만 기러기는 다시 동료들을 따라 떠나고, 소년도 친구들과 함께 연 날리기를 계속한다. 소년과 상처 입은 흰기러기 사이의 짧은 우정을 서정적으로 시적으로 아름답게 그린 이 영화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단순한 동화처럼 보여지지만, 나름의 깊은 의미를 진지하게 담아내고 있다.
색색깔의 다양한 모양의 연이 하늘을 수놓는 장면은 다양성과 조화로움에 대한 은유를 보여주고 있으며, 아이의 날고 싶은 꿈이 투영된 무지개 빛 꿈 장면은 아이들이 느끼는 일상 속에서의 해방감을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우정과 사랑이란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세계를 인정하고, 주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 것이다. -물론, 결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소년과 기러기의 이별장면은 참으로 쿨하고 멋있다. 다른 생명사이의 소통과 교감,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공존을 보여주는 현명함이란 얼마나 근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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