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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468명 중 2명 말 듣고 ‘민사고=폭력학교’ 발표한 교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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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최상위권 학생들이 모여 치열하게 경쟁하는 걸로 소문난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등학교. 20일 이 학교가 느닷없이 ‘일진(一陣)이 판치는 학교’로 둔갑했다. 이날 교육과학기술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 학교 학생들의 일진인식비율은 100%였다. 올해 초 전국의 모든 초·중·고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였다. 문제 학교인 셈이다.

  자료를 꼼꼼히 살펴봤다. 그랬더니 당시 전교생 468명 중 조사에 응한 학생은 2명뿐이었다. 이들이 “우리 학교에 일진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하지만 응답률이 겨우 0.4%에 불과한 조사 결과가 신뢰성이 있을지 없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날 교과부가 공개한 자료는 이미 3월부터 논란이 됐다. 25억원을 들여 전국 1만1363개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지만 평균 응답률이 25%로 너무 낮았 다. 그만큼 학교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민사고처럼 한두 명 또는 두세 명이 응답한 학교가 281곳이다. 자료를 분석한 한국교육개발원의 김태완 원장조차 “표본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교과부는 결과를 해당 학교에만 통보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비공개를 비판하자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갑자기 공개를 강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신뢰성 논란과 함께 불만과 항의가 쏟아졌다. 성실한 조사를 독려했던 일부 학교는 아이러니하게도 ‘폭력 학교’라는 낙인이 찍혔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날 오후 교과부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는 통계가 아니므로 통계로서의 가치나 객관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그렇다면 왜 학교들끼리 서로 비교가 되도록 전체 자료를 공개했을까. 상황이 이런데도 이주호 장관은 23일부터 전국의 학교장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관련 강의를 한다고 한다. 조사도 엉터리로 한 장관이 학교 현실을 얼마나 안다고 강의를 하겠다는 거냐는 비판이 나온다. 자료가 부실한 걸 알았다면 백 번이고 조사를 다시 해야 했다. 그래야 제대로 학교 현실을 알고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 여론에 휘둘려 부실한 자료를 공개해 혼란만 부추긴 이주호 장관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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