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은퇴의 저 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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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선수들이 재계약이나 트레이드의 소문으로 부산한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은퇴를 준비하는 선수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나이 때문에 은퇴하는 선수들도 있고, 구단과의 연봉문제로 은퇴하는 선수, 그리고 아직 젊지만 기대이하의 기량을 보여서 '눈물의' 은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이렇게 야구계를 떠나간 사람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 11월 야구계에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전 야쿠르트의 투수 다카노 히카루(高野光)가 자살한 것이다. 다카노는 84년에 드래프트 1위로 야구르트에 입단한 후 에이스로 활약하다 93년에 은퇴했다. 그는 도쿄의 고급주택가에서 살고 있었는데, 빚만 늘어나고 일을 찾을 수가 없어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카노는 다이에, 오릭스에서 코치직을 맡았으나, 앞으로의 진로 때문에 혼자서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그리고 11월 6일 부인이 제지하는 것도 뿌리치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야쿠르트의 에이스였던 화려한 과거를 가진 다카노였지만, 은퇴한 후의 그의 인생노정은 그리 평범한 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치로나 마쓰이 같은 선수가 몇억엔 받을 것인가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구단에서 전력불가 판정을 받고, 야구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선수들도 많다. 위에 소개한 다카노 경우는 극단적인 예이지만,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은퇴할 시기가 있고, 그후 진로는 역시 어떠한 선수들에게도 고민 거리가 아닐 수 없다.

올해 은퇴를 고민중인 선수 가운에 요코하마의 고마다가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명구계(名球界)라는 모임이 있는데, 고마다도 올해 명구계의 회원이 되었다. 이것은 타자의 경우 통산 2천안타를 달성한 선수만 가입할 수 있는 초슈퍼스타 군단이다.

고마다의 나이는 39세. 요코하마에서 전력불가 판정을 받은 고다마는, 야구만 할 수 있으면 어느 구단이라도 상관없다고 버티고 있지만,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구단은 없다. 선수생활을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퇴해야 하는 그의 마음은 상당히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고마다처럼 야구계에 이름을 남기고 은퇴하는 선수들은 이미 야구선수로서 행복한 인생을 산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야구선수가 되었다가, 1군 시합에도 제대로 못나오고, 은퇴해야 하는 선수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해 프로야구를 떠난 선수들은 12구단을 합해서 120명. 은퇴한 선수들의 진로도 여러가지다. 분석력이 뛰어나고, 말도 잘하고, 잘 알려진 선수 경우는 야구평론가 길도 있지만 이것은 극히 소수이다.

스카우트요원, 기록원, 코치직 등을 비롯한 야구관계의 일을 찾은 선수가 가장 많았다. 눈을 끄는 것은 대만 진출을 노리는 선수도 많다는 것이다. 반면 야구를 떠나서 일반 직장에 취직하려는 선수들도 많다. 가업을 물려받는 선수도 있고, 아예 야구와 관계없이 라면 집을 차린 선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프로생활을 거친 선수들이 새로운 길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10여년을 넘게 오로지 야구만 생각했지만, 다음의 진로를 모르는 사람들.

화려하게 보이는 프로야구이지만, 화려한 무대에서 뛰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프로야구는 완전히 실력으로 평가받는 세계이고 약자에게는 냉정한 세계이라는 것이다.

내년에도 시즌이 끝나고 이 때쯤이 되면, 구단에서 전력불가의 판정을 받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중인 선수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선수들 모두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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