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스민 “상처도 받았지만 격려 더 많이 받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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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상처도 받았지만 대한민국이 얼마나 포용력이 대단한지 한 번에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필리핀 출신의 이주여성으로 19대 국회의원으로 뽑힌 새누리당 이자스민(35·비례대표) 당선인이 17일 자신을 향한 인종차별적 공격에 말문을 열었다. 새누리당이 총선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연 ‘100% 국민행복실천본부’ 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나서다.

 지난달 20일 비례대표 후보가 된 뒤 인터넷 공간에서 시작된 인종차별적 공격은 그의 당선이 확정된 11일부터 더 심해졌다.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증)’ 현상으로 확산됐지만 그는 말을 아껴왔다.

 이 당선인은 “한국에서 살면서 사랑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운을 뗐다. “이 일이 일어나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말들이 많이 나왔다. 저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이 오히려 더 많이 상처를 받게 될까 봐 더 걱정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걱정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격려하고 박수 쳐줘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며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그렇게 (인종차별적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발음은 조금 서툴렀지만 분명하고 또박또박한 말투였다. 그가 공약하지도 않은 ‘불법체류자 무료 의료지원’ 같은 허위 사실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매매혼(賣買婚)으로 팔려왔다”는 날조된 얘기가 떠돌았지만 그는 오히려 ‘포용’을 강조했다. 그가 당선 뒤 내놓은 첫 일성은 “저는 대한민국의 며느리이자, 대한민국 아이의 엄마다”였다.

 이날 새누리당 회의에선 국회의원으로서의 포부도 밝혔다. 그는 “이(국회의원) 자리가 상징으로 끝나지 않게 다문화가정뿐만 아니라 약자, 소외계층을 위한 일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잘 봐주시고 응원해 주시기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당선인은 필리핀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한국인 남편을 만나 1995년 결혼을 했고, 98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남편은 2010년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16)과 딸(13) 남매, 시부모와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다. 이주여성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첫 봉사단체인 ‘물방울 나눔회’에서 사무총장을 맡았고, 서울시 외국인생활지원과에서 ‘외국인 공무원 1호’로 일했다. 지난해 영화 ‘완득이’에선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을 해 ‘완득이 엄마’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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