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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떠난 자리, 노래가 찾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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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인디 음악계의 샛별 최고은. “가수는 노래를 잘 하는 사람, 뮤지션은 자기 생각을 풀어내는 사람, 아티스트는 창조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 목표는 아티스트”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알싸한 포도향이 입안을 적실 때, 크림 치즈 한 조각을 털어 넣는다. 풍미 짙은 치즈가 입안 가득 퍼진다. 비유하자면 그렇다. 인디 포크 뮤지션 최고은(29)의 목소리는. 그만큼 진하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창법은 듣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훑지만, 노래가 끝난 뒤엔 따듯함이 남는 묘한 음색이다. 대부분 영어로 된 노래 제목과 가사도 귀를 잡아 끈다.

 그래설까. 2010년 말 발매된 첫 EP앨범(미니앨범) ‘36.5℃’는 큰 활동 없이도 한정 제작된 1000장이 매진돼 인디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말 발매된 두 번째 EP ‘굿모닝’도 반응이 좋다. KT&G 상상마당이 이 뛰어난 뮤지션을 알아봤다. 인디밴드의 장기공연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웬즈데이 프로젝트’ 첫 타자로 최근 그를 선정한 것이다.

 12일 인터뷰 날, 최씨는 비비크림만 바른 채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무대 위와 밖의 다름이 싫어 무대에도 이렇게 오른다”며….

 최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을 배우며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판소리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다 실패한 뒤론 다른 전공(서강대 프랑스문화)을 택했고, 교내 하드코어 밴드 동아리 보컬로 활동했다. 노래를 직접 만들게 된 건 2006년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던 연인과 이별한 게 계기가 됐다.

 “휴학을 하고 고향인 전라도 광주로 내려갔어요. 매일 힘들어 하던 중 인터넷으로 중고 기타를 사게 됐죠. 혼자 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만들게 됐어요.”

 ◆취미가 직업으로=음악은 취미였다. 생일을 맞은 친구에 한 곡, 한국을 떠나는 영어학원 선생님에 한 곡, 지인들에 선물로 만들어준 노래가 쌓여갔다. 친구들 권유로 곡을 모아 첫 EP를 냈다. 올 2월에야 첫 단독 공연을 계기로 ‘뮤지션 최고은의 삶’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 전까진 음악에 깊게 발을 담그는 게 두려웠어요. 하지만 ‘이제 이 일에 매진해야겠다. 내 길이구나’ 생각이 들었죠.”

 노래 제목·가사가 대부분 영어인 이유가 궁금했다.

 “혈액형이 A형인 까닭인지 직접 만든 노래 가사가 잘 들리면 부끄럽더라고요. 그런데 가사가 영어면 상대방이 한 번에 의미를 못 알아채니까….”(웃음)

 영어 가사는 노래를 더 부드럽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두 번째 EP 첫 트랙 ‘송 포 유(Song for You)’는 최씨의 매력적인 음색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This is song for you/This is song for you’의 반복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끝난 뒤에도 귓가에 맴돈다.

 타이틀곡 ‘노 에너지(No Energy)’는 파격적이다. 반주 없이 보컬로만 나직이 시작되는 노래는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재즈드럼을 거쳐 어느 순간 왈츠로 급격히 변주하더니 마지막엔 몰아치는 스캣(scat·‘다다다다다’ 등 무의미한 음절로 리드미컬하게 흥얼거리는 것)으로 강렬하게 마무리된다.

 이번 공연 제목은 ‘최고은, 호흡의 원근법’. 매 공연은 다르게 꾸며진다. 관객들은 때로는 최씨 바로 옆에 앉아서, 때로는 무대 아래서 최씨의 호흡을 느끼게 된다. 재즈·국악·탱고·일렉트로닉 뮤지션과의 협업도 이뤄진다. 7회 공연을 모두 볼 수 있는 장기관람권도 판매한다.

▶공연정보=서울 홍익대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 5월 9일부터 7주간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02-330-6212.

◆웬즈데이 프로젝트=KT&G 상상마당의 인디밴드 장기공연 지원 프로그램. 대중적 인지도에 비해 실력이 뛰어난 뮤지션을 대중에 소개하기 위해 한 팀의 뮤지션을 선정해 총 7회의 장기 공연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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