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FTA 혜택 소비자에게 돌려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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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김영신
한국소비자원장

지난달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 그 전 수년간 이를 놓고 찬성과 반대가 치열하게 대치했다. 양론의 대립이 무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의 지적은 유리한 협상을 도출하는 근거가 됐다. 그런 과정을 거쳐 협정이 발효된 요즘도 한·미 FTA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해묵은 논쟁을 반복하기보다 FTA의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FTA를 체결하는 궁극적 목적은 소비자의 후생 증진이다. 한·유럽 및 한·미 FTA 이후 일본·중국과도 협정이 완료되면 머지않아 대부분의 수입 소비재가 무관세화된다. 또한 제도적 장벽에 의해 국내에 진출할 수 없었던 선진국 서비스사업자에게 진입을 허용함으로써 외국자본의 유치와 소비자 선택의 다양화도 기대된다.

 FTA는 또 우리 기업들에 전례 없는 혁신과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이다. 기업은 더 이상 보호막이 없는 공동시장에서 생산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만 선진국의 유수 기업과 경쟁하며 생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강점이 드러나 비교우위를 확보한 분야를 중심으로 자원이 집중됨으로써 산업 전반의 생산효율이 창출되고, 이는 다시 가격 경쟁을 통해 국내외 소비자 이익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FTA가 추구하는 진정한 ‘소비자 후생 효과’다. 체결국의 모든 기업은 FTA가 정한 자유화된 시장 룰에 따라 경쟁해야 한다. 경쟁의 우열을 판정하는 주체는 체결국의 소비자며, 이들의 선택에 따라 기업의 생존과 각국의 비교우위 및 경제구조가 결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FTA 체제는 소비자주의의 확립과도 상통한다.

 한·유럽(EU), 한·미 FTA가 발효됨에 따라 우리는 형식적으로 개방의 이익이 소비자 후생으로 이어질 필요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FTA는 소비자 후생 효과를 항상 보장하지 않는다. 소비자 후생 효과는 시장에서 ‘경쟁’과 ‘소비자의 선택’이 원활하게 작동해야 한다는 충분조건을 요구한다.

 FTA가 소비자 후생 효과를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첫째, 기업 행동에 대한 사후적 시장 감시와 엄격한 경쟁법 집행이 필요하다. 정책당국은 수입 소비재가 국내 유통시장에서 활발한 가격경쟁을 할 수 있도록 경쟁을 제한하는 거래 관행들을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진국 다국적 기업의 행동에 대한 감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들은 브랜드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지닌 소비계층을 보유하고 있어서 국내시장에서 비경쟁적 환경에 안주하며 독점이익을 탐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독점 수입업자와의 사적 규제를 통해 병행 수입업자들의 거래 자유를 제한하거나 재판매가격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과도한 독점 마진을 취하는 행위를 견제해야 한다.

 둘째,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기능이 활성화돼야 한다. 소비자가 가격과 품질에 민감하게 선호를 표출해야만 기업의 품질향상과 기술혁신을 기대할 수 있고 국민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소비자가 브랜드의 유명세나 광고, 입소문에 따라 구매하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선택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데도 그 이유가 있다. 가격·품질에 대한 객관적 선택 정보를 확충하고 현명한 소비자를 육성하는 것은 소비자주의를 확립하는 초석이 된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무장된 소비자만이 오늘날과 같은 경제사회에서 현명한 선택,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다.

김영신 한국소비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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