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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여성은 꽃이라네' 공연 보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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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김정은 체제가 7일로 100일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29일 김정일 사망 애도 기간이 끝난 시점부터 계산해서다. 중앙SUNDAY는 북한 권력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노동신문으로 ‘김정일 사후 김정은 통치 100일’을 집중 분석했다. ▶김정일 애도 기간이 끝난 지난해 12월 30일부터 100일 ▶18년 전 김일성 애도 기간이 끝난 1994년 7월 18일부터 100일을 비교했다. 약 700일치 노동신문 1면과 2·3면 등에 나타난 주요 보도, 사설·정론, 특이 요소가 대상이었다.

분석 결과 신세대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세습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취약한 권력을 강화하고 장악하기 위해 노래·친필·시·음악회 관람 같은 감성적 수단을 집중 동원했다. 선전·선동전을 압축적으로 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불완전성을 반영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이같은 모습은 신세대 권력의 차별화인가 아니면 불안한 정권의 눈가림인가.

2012년 1월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식 장례가 끝난 3일 뒤. 북한 최고 통치자가 된 김정은이 맞는 첫해 첫날이다. 북한 주민뿐 아니라 세계의 눈길이 쏠린 이날 노동신문 1면은 특이했다. 장례 분위기가 여전히 무거운 가운데 뜻밖에 ‘조선의 힘’이란 노래를 전면에 실은 것이다. ‘폭풍 안고 비약하는 조국 땅 어데서나… 김정일 장군 그이는 조선의 힘이다’라는 내용의 김정일 예찬송(頌)이다.

수십 년간 새해 첫날 1면에서 북한의 방향을 제시했던 공동 사설은 2면으로 옮겼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듬해인 1995년 1월 1일에도 공동사설은 1면에 실렸다. 그런 시도가 2011년 1월 1일 한 차례로 그치긴 했지만 이번엔 양상이 달랐다. 이날 노래는 김정일 사망 100일 동안 거듭되는 노래 정치의 시작이었다. 노래는 이후 여러 차례 1면에 등장했으며 각종 매체에서 되풀이되고 교육됐다.

전문가들은 ‘준비된 지도자 김정일과 달리 카리스마도 없고 준비도 덜 된 김정은은 권력·권위 강화를 위해 대대적·압축적 선동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탈북자 김진하씨는 “김정일은 군내 정치간부 회의에서 ‘한 편의 시, 한 가락의 노래는 수천·수만 문의 포보다 더 위력하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김일성 사망 때 후계 20년이 지난 김정일은 권력을 장악했고 리더십이 있었지만 김정은은 후계 과정이 짧아 그럴 기회가 없어 짧고 신속하게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탈북자들은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김정은의 다지기 사업이라고 했다.

김정일이 ‘음악 정치’라는 용어를 만들 만큼 대표적 선동 수단인 노래는 2012년 초부터 강하게 시동 걸린다. 1월 1일 3분 길이의 노래 ‘조선의 힘’은 북한의 조선중앙TV 중요 시간에 미사일 발사, 방사포 발사, 전투기 비행 같은 무력을 과시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전파를 탔다. 평양3방송 같은 유선라디오의 전파도 탔다.
이어 1월 16일엔 1면 전면에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가 나왔다. 서정풍의 노래는 깊은 산, 꽃 등을 배경으로 시작해 궤도를 도는 북한 인공위성과 미사일을 보여주다 주체탑 불꽃으로 마무리한다. 1월 27일엔 ‘그리움은 끝이 없네’가, 2월 13일 1면엔 ‘흰 눈 덮인 고향집’이, 3월 6일엔 ‘내 조국이 장군님 품인 줄 알았다’는 내용의 ‘나는 알았네’가 실렸고, 김정일 사망 100일이 지난 3월 25일자엔 1월 16일 실린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가 반복된다. 모두 사상성이 강한 노래다. 김정일 사망 100일 전 노동신문에도 10개의 노래가 나오지만 대형 보도는 없고 3·4면에 작게, 내용도 ‘내가 반한 그 총각’ ‘사과꽃 만발할 때’와 같은 서정적 내용이 주종이다. 김진하씨는 “당 차원에서 하부로 노래 암기 과업이 내려와 학습을 하는데 이를 못 따라가면 큰일 난다”고 했다.

탈북자 이금룡씨도 “노동신문에 나오는 노래는 무조건 배워야 한다. 의무적으로 학습하며 라디오·TV와 각종 공연 등에서 반복된다”고 말했다.

친필을 활용한 김정은의 ‘사인 정치’도 독특하다. 1월 3일자 신문에는 애도 기간 직후인 2011년 12월 30일 김정은이 일괄 서명한 친필 서명 사진 11개가 실렸다. 집권 첫날 대민 이벤트가 서명 정치였던 셈이다. 대상은 김일성종합대, 희천 발전소, 하나전자합영회사 하나음악정보센터, 국가과학원 413 연구소, 인민보안부 대동강총국 등 다양하다. 김정일 시기에는 대개 ‘친필을 보냈다’는 기사가 소개되거나 드물게 친필 서명 하나만 1면에 실었다. 탈북자 이금룡씨는 “지도자 친필을 받는 것은 비할 데 없는 영광으로 간주돼 이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 '김정은 집권 100일 집중 분석' 2편에서 계속됩니다.

안성규·홍상지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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