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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인사이트] 실패한 아이디어 모아놓는 ‘테크박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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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심재우
자동차팀장

요즘 재계에서 잘나가는 그룹 중 하나는 CJ다. 지난해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등 사세 확장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와중에 CJ가 선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겠지만 KAIST 경영대학의 김보원 교수는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의 성공사례”라고 분석했다.

 CJ에서 임원이 되면 교육을 받게 되는데, 그중 핵심적인 커리큘럼이 ‘드림라인 실패학’이다. 드림라인은 1997년 도로공사와 공동 출자해 설립했다가 5000억원만 날리고 2001년 하나로통신에 매각한 인터넷 전용회선 사업체다. KT와 두루넷 등 선발주자가 있는 상태에서 미래성장사업이라는 장밋빛 환상만 갖고 뛰어들었다가 규모의 경쟁에서 밀리며 막대한 시설투자비만 떠안은 채 손을 뗐다. CJ가 드림라인을 매각하고 관련 임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면 단순히 원점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대신 CJ는 드림라인이 실패한 이유와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해 내부 교육용 자료로 만들면서 더 이상의 실패를 막고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한국의 기업사를 보면 성공사례 일색이다. 실패한 경영인이 다른 사업에 재도전하기 힘든 구조여서 그저 숨기려고만 한다. CJ도 드림라인 사례가 외부로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 내부에서만 사용 중이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실패에서 성공의 싹을 틔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스마트폰 신화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옴니아폰의 실패가 있었다. 현대자동차 또한 북미 시장에서 갖은 수모를 당하는 실패 덕분에 품질을 빠른 시간 안에 끌어올릴 수 있었다. 산업 평균으로 봤을 때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성공하는 확률은 5%라고 한다. 19번의 실패를 겪어야 한 차례 성공의 달콤함을 맛보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면서도 최고경영자(CEO)들이 실패한 부하 직원에게 관대한 경우는 많지 않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다 보니 도전적인 과제는 책상 고무판 밑으로 들어가고 기업가 정신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미국의 디자인 컨설팅 기업 아이디오(IDEO)에는 ‘테크박스(Tech Box)’라는 게 있다. 실패한 아이디어를 모아놓는 곳이다. 언젠가는 보석 같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쓰레기통이 아닌 테크박스에 보관한다. 실패를 용인하는 테크박스가 있기에 직원들은 자유롭게 토론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꺼내놓는다. 아이디오가 ‘전 세계의 혁신 공장’으로 불리는 배경이다. 한국에도 테크박스를 설치해 실패를 권장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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