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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친구 2215만 명 … 레이디 가가 덕분에 국제적 ‘유명세’ 탄 한국 영등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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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고교 1학년인 아들의 기상 시간은 오전 6시다. 중학교 때보다 한 시간은 빨라졌다. 공부에 빠져서가 아니다. 학교 방송반에 든 때문이다. 아침 방송을 준비하려면 7시까진 등교해야 하는데, 힘들긴커녕 신나고 재미있단다. 요즘은 방송제 준비로 바쁘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라며 친구들과 각종 영상물을 열심히 돌려 본다.

 아이들이 참조하는 아티스트 중엔 미국 팝 스타 레이디 가가(26)도 있다. 히트곡을 연달아 뽑아낸 싱어송라이터이자 전위적 행위예술가다. 지난해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명사’(포브스)에 뽑히기도 했다. 가가는 무엇보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를 표상하는 팝 아이콘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2215만 명의 트위터 친구를 뒀다. 뮤직비디오는 TV가 아닌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다. 그중엔 4억5600만 조회수를 기록한 것도 있다. 그러니까 인터넷 접속률이 유난히 높은 국내 십대들에게 레이디 가가는 소녀시대만큼이나 친근한 아티스트라는 얘기다.

 이런 그녀의 내한 공연을 두고 세상이 시끄럽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27일 있을 공연에 대해 ‘만 18세 미만 관람불가’ 판정을 내린 때문이다. 2009년 내한 공연은 ‘만 12세 이상 관람가’였다. 그에 준해 티켓을 판 주최 측은 미성년 예매자를 찾아 ‘강제 환불’ 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이번 공연은 세계 11개국에서 진행할 월드 투어 ‘본 디스 웨이 볼(The Born This Way Ball)’의 일환이다. 투어에 포함된 아시아 5개국 중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정을 내린 곳은 한국뿐이다. 문화계에선 영등위가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의 공연 취소 압력에 굴복한 것 아닌지 의심한다. 이 단체들은 그녀가 ‘사탄을 숭배하고 동성애를 옹호한다’며 비판해 왔다.

 물론 가가의 퍼포먼스 중엔 그로테스크하다 싶을 만큼 충격적인 것들이 적잖다. 이번 공연 머리 곡인 ‘본 디스 웨이’ 뮤직비디오만 해도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가사는 어떤가. ‘생긴 대로의 네 자신을 사랑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냐. 하나님이 널 완벽하게 만드신 때문이지. 그러니 고개를 높이 들렴. 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가가는 최근 하버드대와 함께 노래와 같은 이름의 왕따 퇴치 재단도 만들었다. 미국 언론은 가가를 종종 ‘십대의 멘토’라 칭한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녀를 “욕망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주체로 팬덤을 확보한 독보적 존재”라고 평했다.

 3일 가가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관람을 원하는 미성년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준 한국 성인들에게 감사한다. 정부가 마음을 바꿀지 모르겠다.” 점잖은 충고도 덧붙였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이 유익한지 결정할 영향력(credit)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덕분에 세계 트위터리안들은 한국에 대해 자못 강렬한 인상을 갖게 됐다. 그게 자랑할 일인지 망신스러운 상황인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유독 민감한 높은 분들이 알아서 판단하시라.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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