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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인사로 채워진 공직윤리지원관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008년부터 진행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은 불법과 합법 사이를 넘나들었다. 관련 규정상 공직사회 비위첩보나 동향 파악이 주 업무였지만 자주 ‘선(線)’을 넘었다. 직무감찰 대상이 아닌 민간인을 사찰하는가 하면, 공직자라 해도 미행이나 도청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왜 그랬을까. 전문가들은 “무지와 아마추어리즘이 빚은 대형 참사”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8년 7월 당시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급조하다시피 하는 과정에서 이곳 직원들은 대부분 TK(대구·경북)를 중심으로 한 영남 지역 출신, 전직 경찰들로 채워졌다. 이 전 비서관은 팀원 구성 때 "고향이 어디냐”부터 물었다고 한다. 감찰 전문가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들은 2010년 검찰의 1차 수사 과정에서 “김종익 KB한마음 대표가 민간인인 사실을 몰랐다”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장진수 전 주무관(옛 주사)은 최근 “2010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 김충곤 점검1팀장이 주재한 대책회의에서 ‘KB한마음이 공기업인 줄 착각했다고 해야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더욱이 김기현 전 조사관은 관련 문서를 개인 USB에 보관해 오다 검찰에 압수당하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법과 합법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행 대통령령과 총리훈령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영역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로 제한된다.

 KBS 새 노조 측이 지난달 30일 공개한 불법 사찰 관련 문건을 보면 그중에는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는 등 정상적인 업무가 적지 않다. 그러나 BH하명사건이라고 적힌 ‘윗선’ 보고서 등에는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등장한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모 산부인과 등 민간인에 대한 사찰은 불법이다. 여기다 감사원 간부가 내연녀를 만나는 시간, 장면, 나눈 대화 등이 상세히 적힌 문건은 이들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 미행·도청 수준의 사찰을 벌였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한 사정기관 출신 인사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들이 현장에 나가면 비위 의혹 당사자를 임의동행하거나 사무실을 수색하는 등 강제수사나 다름없는 행위를 죄의식 없이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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