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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갈림길에 선 동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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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호 29면

10원짜리 동전에 든 금속 값이 10원을 넘어서면 그걸 녹여 파는 자들이 출현한다. ‘녹는 점(melting point)’ 돌파 현상이다. 그걸 막으려면 10원짜리 크기를 줄이거나, 금속 값이 덜 들게 바꿔야 한다. 2006년 초 한국은행이 그런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10원짜리 동전을 사 모으려는 사람들이 화폐 교환 창구, 아니 ‘금속판매점’에 북적거렸다. 동전 투기다. 급기야 교환 동전 상한을 500개(5000원)로 정해야 했다.

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몰아낸다’. 미국에서 재료 값이 덜 드는 동전, 일종의 악화가 나올 듯하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최근 하원 청문회에 동전 재료 변경 계획을 보고했다. 목적은 7500만 달러의 예산 절감이다. 현재 1센트 동전은 2.4센트, 5센트 동전은 11.2센트의 제조비용이 든다. 새 동전 주조는 헤지펀드 매니저 카일 배스가 정확히 예상한 일이다. 경제위기에 역베팅해 대박을 터뜨린 실력가답다. 지난해 여름, 그는 5센트 동전 2000만 개를 구입해 개인금고에 보관했다. 부메랑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는 배스가 “2년 내 5센트짜리 동전의 니켈 함량이 바뀔 것”이라고 장담하며 자신에게 동전 투자를 권했다고 전한다.

미국 일각에선 “쓸모없는 1센트 동전을 아예 없애자”고 한다. 캐나다의 영향이 크다. 캐나다는 지난달 예산 절감 차원에서 1센트짜리(제작비 1.6센트) 동전의 퇴출을 결정했다. 또 1센트 수요 자체를 줄이기 위해 현금 거래 때 결제 단위 끝자리를 5센트나 10센트로 강제하기로 했다. 캐나다가 먼저 실행하긴 했지만 미 의회에도 지난 10여 년 새 몇 차례나 1센트 폐지 법안이 제출됐다.

미국의 1센트 동전은 아직 살아 있다. 동전을 지키려는 세력이 의외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1센트 수호 운동의 선두엔 동전 재료와 관련된 업체들이 서 있다. 이들 때문에 금속 비율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 A금속을 줄이려 하면 A금속 관련 단체가 반대해서다. 미국은 지난해(회계연도 기준) 동전 제조에 구리 1만6365t, 니켈 2311t, 아연 1만1844t을 사용했다. 더 무서운 건 ‘친서민’을 표방하는 동조세력이다. 동전을 기부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자선단체,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소비자단체 등이 그들이다.

동전의 천자만태(千姿萬態)는 금속 값이 가뜩이나 오른 데다 재정 사정이 나빠진 결과다. 동전 주조에 가장 많이 쓰이는 구리만 해도 10년 동안 4~5배 올랐다. 향후 10년간 또 그렇게 오른다면 동전은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 구리 가격은 중국 경기의 부침과 비슷하게 움직인다. 전 세계 생산량의 40%를 소비하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붉은 금(China’s Red Gold)’이다. 또 다른 별명은 ‘동(銅) 박사(Dr. Copper)’. 경제전문가 못지않은 경기 예측력을 보여줘 얻은 별명이다. 세계경제의 풍향도, 동전의 운명도 ‘동 박사’는 알고 있음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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