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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도 개성 있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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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호 18면

일러스트=강일구

우리나라의 결혼식은 별로 감동적이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웨딩드레스와 꽃 장식, 음식의 가격만 다르지 비슷비슷한 형식이라 영 재미가 없다. 혼수나 앨범사진, 해외여행도 마치 패키지 같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양쪽 혼주들의 의견에 휘둘려 혼인 당사자들의 의견이 소외되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그래도 신부의 의견이 존중되는 추세이긴 하다. 하지만 부모 세대에 비해 가격만 달라졌을 뿐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개성을 강조하는 젊은이들답지 않다. 혼인비용 때문에 등골이 휜다는 부모들이 아직도 적지 않지만 혼수로 인한 갈등이 이혼 사유가 될 정도라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사치스러운 혼례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이들도 막상 자신에게 큰일이 닥치면 양쪽 집안의 부모들과 예비 신랑·신부도 쓸데없는 기싸움에 돌입한다. 이른바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남부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도 한다. 주변에서 자꾸 부추기거나, 혹은 주변을 너무 의식하는 경우도 많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로 경쟁하는 문화가 되어 버린 셈이다. 옆집 아이가 무슨 분유와 기저귀를 쓰는지부터 시작해 장례식까지 한국의 모든 의식은 자신이 원하는 선택이 아니라 남의 눈에 비치는 것 때문에 경쟁하고 휘둘리는 모양새다. 분에 넘치는 화려함을 과시하다 정작 가족들은 빚더미를 안게 된다면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호화스러운 결혼식을 하는지 혼란스럽다.

주서(周書) 고구려전에는 고구려 사람들은 혼폐금, 즉 지참금이나 혼수를 주고받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고대 아프리카나 유럽 등의 약탈혼과는 달리 한반도의 결혼은 상당히 점잖았던 모양이다. 예학이 발달한 조선시대에는 관혼상제에 관한 주자의 학설을 모아 만든 문공가례에 따라 혼인 예절이 진행되었다. 결혼에 대해 어른들이 의논하는 의혼(議婚), 사주단자를 교환하는 납채(納采), 신랑이 신부 집에 붉고 푸른 비단과 음식 등을 보내는 납폐(納幣), 신랑이 신부 집에 가 신부를 데리고 오는 친영(親迎)의 네 가지 단계로 요약된다. 신부 집안은 보통 닭·대추·실·포 등을 올린 큰 상을 시댁에 올렸고, 이때 신랑댁 어른들이 소략한 선물을 주었다. 하지만 극심한 전쟁과 가난으로 인한 정체성 혼란을 겪은 탓인가, 전통적인 소박한 격식은 사라지고 서양식도 동양식도 아닌 어설픔만 가득하다.

그러나 아무리 풍속이 천박해졌다 해도 결혼 당사자들이 의지를 갖고 바꾸면 될 일이 아닐까. 젊은이들이 자신의 창조성을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이용에만 쓰지 말고, 혼인 같은 인생의 고비마다 멋지게 발휘해 주면 좋겠다. 스카이다이빙이 좋으면 비행기에서, 야구가 좋으면 야구장에서, 등산이 좋으면 산에서 할 수도 있다.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시동으로 꾸미고, 축의금 대신 기부금을 받는 것은 어떨까.

결혼은 성인으로 입문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분에 넘치는 호화스러운 혼수와 혼인비용은 어쩌면 신랑·신부의 인격적 존엄과 독립을 방해하는 독이 아닐까 싶다. 혼인비용이 증가하는 만큼 이혼율도 높아지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할 수 있다는 패기가 요즘 젊은이들에겐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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