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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에 걸린 주술 '황금가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 사기극 때문에 일본의 학술계와 문화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하여 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이라는 지위에까지 오른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고고학자가 무려(?) 베이징원인의 시대와 맞먹는 70만 년 전의 석기를 발굴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거기까지는 다 좋은데, 문제는 그 닷새 전에 그가 미리 혼자 발굴지에 가서 석기를 파묻는 장면이 사진으로 찍혀 폭로되었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그는 일본 전역에서 각종 구석기를 혼자서 발굴하면서 일본의 문명과 역사가 시작된 연대를 계속 앞당겨왔다. 그 성과들이 역사 교과서에도 반영되어 일본에도 전기 구석기 문화가 있다는 학설이 수록되었는데, 이제 모조리 수정 대상이 되었으니 소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고고학에서 이런 사기극은 드물지 않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영국의 필트다운인이 있다. 1911년 후지무라처럼 아마추어 고생물학자였던 도슨이라는 사람이 오랑우탄의 턱뼈를 미리 묻어놓고 새로운 초기 인류의 머리뼈 화석을 발굴했다고 사기를 친 것이다. 이 사기극은 후지무라의 경우보다 더 오래 가서 1953년에야 조작임이 판명되었다(도슨은 1916년에 죽었다). 더구나 도슨은 오랑우탄의 뼈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뼈를 줄로 갈고 오래 묵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중크롬산 칼륨으로 화학 처리까지 했으니 후지무라보다 훨씬 교활했던 셈이다.

후지무라가 일본에도 구석기 문명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듯이 도슨도 영국 학술원의 회원이 되려는 개인적인 욕심 이외에 유럽 전역에서 발굴되는 초기 인류의 유골이 유독 영국에만 없다는 사실을 뒤집으려는 야심에서 그런 사기를 저질렀다. 같은 섬나라이기 때문일까?

인문학, 그 중에서도 특히 '며느리도 모르는' 고고학이나 인류학 분야에선 원래 추측(좋게 표현하면 학문적 상상력)이 중요하다. 예컨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키는 유골로 알 수 있지만 검은 피부였다든가, 체모가 많았다든가, 발정기가 있었다든가 하는 사실들은 추측으로 짐작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나마 그런 추측을 가급적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전개하고자 노력하게 된 것도 프레이저 같은 학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세기에 발생한 인류학은 신흥 학문이 그렇듯이 초기에는 후지무라나 도슨 같은 사기꾼들이 판치고 설치는 분야였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50년에 걸쳐 프레이저의 연구 성과가 <황금가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면서(국내에 번역된 <황금가지>는 저자 스스로가 축약한 판본이다) 인류학은 당당한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잡게 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번 수능시험을 보는 입시생들에게는 지망할 학과가 하나 줄었으리라.

프레이저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건 주술이다. 지금은 주술이나 무속도 학문의 주제로 대접받고 있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라면 다르다. 실증주의가 모든 학문에 걸쳐 맹위를 떨치는 시대에 지극히 비과학적인 주술이라니? 그러나 프레이저의 연구 방식은 아무리 완고한 실증주의자라도 두 손 들 수밖에 없을 만큼 엄정하고 '실증적'이다. 그는 주술이라는 비합리적인 행위에 실은 대단히 합리적인 계산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주술이 없었다면 종교와 과학도 있을 수 없다.

"다양한 종교적 신념들과 주술적 요소들은 획일적이고 보편적이며 지속적일 뿐더러 인간 정신의 가장 소박하고 원초적인 형태를 보여 준다. 모든 민족은 주술을 통해 종교와 과학을 이루었고 지금도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다. … 사회의 진보는 기능의 분화에 있다. 사회의 진보 과정에서 주술사는 특수한 직업적 계급을 구성한다. 주술사가 왕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면 주술적 기능은 점차 후퇴하고 주술이 종교에 의해서 배제된다."

주술을 마냥 비과학적인 것으로만 보면 그것에 뿌리를 둔 종교와 과학, 나아가 '주술사가 왕으로 발전하는 것', 즉 정치도 역시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과학이 비과학적이다? 이 말이 모순이라고 인정한다면 주술은 당연히 학문 분야 내로 들어와야만 한다. 인류학의 근거는 여기에 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도 점쟁이가 없는 곳은 없듯이 주술, 혹은 주술적 요소들은 실상 우리의 '현대적인' 생활에도 깊이 뿌리박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이란과 이라크, 유고 문제에서 보듯이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라면 오늘날에도 주술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필요한 게 된다.

프레이저는 주술을 모방 주술과 전파 주술로 구분한다. 모방 주술은 형태상의 유사성을 토대로 한다. 이를테면 비를 오게 하기 위해 항아리에 물을 뿌리는 것,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임산부가 우유를 마시면 아이의 피부가 희고 커피를 마시면 아이의 피부가 까매진다고 생각하는 것,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죽이기 위해 왕후의 인형을 만들어놓고 바늘로 마구 찌른 것 등등이 모방 주술이다.

전파 주술이란 한 사람의 물건이 그 소유자에게서 떨어져 있어도 계속 영향력과 공감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주술이다. 프레이저는 19세기 물리학자들이 진공 속에 실재하는 것으로 가상했던 에테르를 예로 드는데, 쉽게 말하면 장희빈이 만약 인현왕후의 인형이 아니라 머리털이나 치아를 훔쳐다가 주술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그게 전파 주술에 해당한다. 그럼 후지무라가 고고학 발굴터에서 발휘한 주술은 모방 주술일까, 전파 주술일까?

남경태 (dimeola@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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