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명 참석 종정 추대식 유대 랍비가 헌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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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계종 13대 종정에 추대된 진제 스님(왼쪽)이 24일 부산 해운정사에서 유대교 랍비인 잭 벰포라드를 만나 종교간 대화를 나눴다. 벰포라드 랍비는 지난달 미국 국가조찬기도회에 진제 종정을 초대해 인연을 맺었다. 벰포라드 랍비는 28일 진제 스님 종정 추대식에 초청돼 헌사를 했다. [사진 조계종 총무원]

“답파-천성정액상(踏破千聖頂額上)하니, 세출-세간부사의(世出世間不思議)로다.”(일천 성인의 이마 위를 밟아 파하니 세간과 출세간이 생각으로 헤아리지 못함이로다)

 28일 오후 조계종 13대 종정(宗正)에 오른 진제(眞際·78) 스님의 추대 법어(法語)다. 한국 불교의 선맥(禪脈)을 잇는 최고의 선사(禪師)라는 스님의 평가에 걸맞게 법어는 깨달음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봉하원성무생인(棒下圓成無生忍)하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로다.” 즉, 주장자 아래 남이 없는 진리를 뚜렷이 이룰 것 같으면 한 번 뛰어서 바로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는 것이다.

 진제 종정은 특히 법어 중간에 “지금 서구의 지식인은 인간성 회복의 대안으로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참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마음의 갈등과 잡념을 없애고 진리에 이르는 길도,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의 진리의 지도자가 되는 길도 지름길은 간화선”이라고 했다. 한국 불교의 세계화와 관련, 새 종정의 발걸음이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종정 예경실장 효광 스님은 “기회가 닿으면 한국 선불교를 해외에 알리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열린 이날 추대식에는 자승(慈乘) 총무원장 스님과 교구본사 주지 스님, 종회의원 스님, 정치권 인사, 재가 신도 등이 1만 여 명이 참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를 최광식 문화부 장관이 대독한 데 이어 김의정 중앙신도회장,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차례로 헌사를 했다. 특히 세계적으로 종교간 대화에 힘써 온 저명한 유대인 랍비인 잭 벰포라드가 헌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달 진제 종정이 미국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세계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선불교를 알릴 수 있도록 주선한 인물이다. 1962년 조계종 통합 종단 출범 이후 외국의 종교 지도자가 종정 추대식에 참가해 헌사를 한 것은 처음이다.

 추대식 후 인터뷰에서 벰포라드 랍비는 “지난해 미국에서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진제 종정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타 종교 지도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마치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즉각 대답을 해 참석자들이 크게 놀랬다”고 했다.

 그는 “일본의 선불교 등이 진작에 소개된 상황에서 한국 선불교가 서양에서 자리잡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진제 종정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정통 지도자는 대단히 드물다. 우직한 한국 선불교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했다. “1960년대 미국에 소개된 불교는 어느새 정신 건강, 마음의 치유 등에 주력하는 종교로 굳어져 진정한 형태의 불교는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릴 방안에 대해 “외국의 종교 지도자들과 자주 교류해야 하고, 종정 스님 같은 분들의 글과 말씀을 정확히 번역해 대학 등에서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화선(看話禪)=화두(話頭)를 들고 좌선하는 북방 불교의 선수행법. 화두를 통해 의심을 일으키고, 그 의심을 풀면서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이다. 송나라의 대혜(大慧) 선사가 이를 중국 선종의 전통적 수행법으로 확립시켰다. 현재 조계종단의 대표적 선수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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