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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일본 고교야구 이야기 (2)

중앙일보

입력

전편에서는 고교야구가 사회적으로 어떤 입장에 있는지를 봤다. 그럼 고시엔의 주역인 고등학생들에게 고시엔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고시엔에 출전할 정도의 학생이라면, 한번 정도는 프로야구 팀의 입단을 생각해 봤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시엔은 바로 프로야구에 진출하기 위한 하나의 등용문이다.

현재 프로야구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선수들 중에는 고교시절 고시엔에 출전, 대기록을 세운 선수들이 상당히 많다.

최근 고교야구 출신 프로선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마쓰자카(세이부 라이온스)일 것이다.

마쓰자카는 고시엔에서 98년 봄대회와 여름대회, 그리고 전국 체전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여름 대회 결승전에서는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세웠다. 보통 고등학교 선수의 수준은 직구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140km정도이고, 또 지나치게 스피드를 의식하면 제구력이 흐뜨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마쓰자카는 고교시절부터 145km 이상의 빠른 직구를 자랑했다. 날카로운 제구력도 겸비함은 물론이다. 게다가 그의 대표 변화구인 슬라이더는 135km에 달해, 고교야구의 타자들은 그의 상대가 못되었다.

그 후 프로에 입단한 마쯔자카의 활약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다.

올해 센트럴리그의 MVP인 마쓰이 역시 고교야구의 슈퍼스타였다. 그가 속했던 세이료고교(이시카와현 대표)는 당시 최강의 전력을 보유했고, 그 중심에는 마쓰이가 있었다. 마쓰이는 상대투수로부터 다섯타석 연속으로 고의사구를 얻기도 했다.

얼마나 강한 타자였길래 그랬는지, 이 일화 하나만으로도 마쓰이의 실력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연속 고의사구는 그 후 대단한 논쟁을 일으켰고, 상대팀 감독을 퇴임시킬 정도였다. 고교야구는 승패를 떠나 페어플레이 정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의 주역은 PL학원(오오사카 대표)였다.

구와타(요미우리)와 기요하라(세이브-요미우리)를 보유했던 PL학원은 그들이 입단한 83년 이후 3년동안 고시엔에 5회출장, 우승 2회, 준우승 2회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구와타는 고시엔에서 통산 20승 3패를 기록했고, 기요하라도 한 대회 3홈런이라는 기록과 통산 9홈런이라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PL학원은 지금까지도 언제나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고, 프로야구 선수중에 가장 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다.(총21명, 2위는 마쯔자가가 소속했던 요코하마고의 16명)

요미우리의 강타자 다카하시는 도인(桐蔭)고등학교 출신이다. 그는 고교시절 고시엔에 출전,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으나 항상 주목을 받는 선수였다. 다카하시는 그 후 게이오대를 거쳐 요미우리에 입단했다.

그의 모교인 도인(桐蔭)고는 다른 학교와는 좀 다르다. 도인은 가나가와현에서도 유명한 진학교로서 명문 도쿄대에 매년 100명 가까이를 보내고 있고, 다카하시가 입학한 게이오대에도 300명 정도를 보내고 있다. 다카하시 역시 일반입시를 거쳐서 게이오대에 입학했다. 도인고는 진학교임에도 불구하고, 200개가 넘는 가나가와현의 고등학교의 대표로 출전하는 대단한 일을 일궈내고 있다.

고시엔에 출전한 팀 중에서 이러한 진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적지만, 그래도 공부를 병행하면서 야구에 집중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고교부터 예술고, 체육고, 일반고로 나누지만, 일본에서 그런 분류는 거의 없다. 그래서 도인처럼 진학교이면서도 체육을 중시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일본에서 고교야구 열기는 대단하기 때문에, 고시엔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투수의 경우는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몸으로 커브나 슬라이더, 포크볼 같은 변화구를 던지기 때문에, 잘못하면 운동복을 벗어야 하는 큰 부상을 입기 쉽다.

미국에서는 몸이 완전히 성장하기 전까지는 투수들에게 변화구를 금지한다고 한다. 물론 일본도 직구부터 시작하기는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변화구를 가르쳐 어깨부상을 당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전 야쿠르트의 투수 아라키(83년 드라프트 1위로 입단)가 아닐까 싶다. 아라키는 와세다 실업고교 시절 고시엔에 5번 출전했고, 에이스로서 맹활약했다. 잘생긴 얼굴 때문에 여고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아라키는 야구르트에 입단했다.

잠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아라키는 곧 오른발 발꿈치에 부상을 입게 되면서, 3년동안 마운드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 후 재기를 노렸지만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말았다(현재 NHK해설자). 만약 고교시절의 혹사만 없었다면 센트럴리그를 대표하는 투수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고시엔 대회는 너무나 중요한 대회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무리한 운동을 하다가 선수생명을 잃는 부작용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도 미국처럼 나이에 맞는 선수관리법을 더 도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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