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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결산 (3) - 이종범 결산

중앙일보

입력

2000시즌 이종범은 모든 면에서 비관적인 상황에서 출발했다. 언제나 든든한 선배였던 선동열이 은퇴로 팀을 떠났고, 동기 이상훈도 메이저리그로 떠나버려 홀로 남게된 이종범은 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이종범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주니치가 타력 보강을 위해 현역 메이저리그 출신 데이비드 닐슨(일본명 : 딩고)을 2억1천만엔에 달하는 거액에 영입한다는 것이었다.

주니치의 팀사정상 기존의 붙박이 4번타자 레오 고메스가 있는 상황에서 딩고가 들어올 자리는 바로 이종범의 포지션인 좌익수 밖에 없었다.(일본프로야구의 규정상 1군 엔트리에 외국인 야수는 2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이종범의 2군행은 명약관화해 보였다.

딩고에게 밀리지 않기위해 이종범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이를 악물었다. 스프링캠프에서 코치진으로부터 가장 호평을 들었고, 시범경기에서도 마쓰자카에게 3루타를 쳐내는 등, 실력으로 딩고를 누르려 했지만 이미 호시노 감독의 마음은 자신이 찍어서 데려온 타자인 딩고에게 가 있었다.

결국 이종범은 자신의 야구인생에서 처음으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수모를 감수해야만 했다. 참기 힘든 치욕이었지만 이종범은 2군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며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냈다. 2군에서 이종범은 발군의 타격을 보이며 명예회복의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왔다. 시즌 시작하자마자 주니치는 최악의 8연패에 빠지며 꼴찌로 추락했다. 타선 부진이 큰 원인이었다. 특히 큰 기대를 걸었던 딩고가 1할대에 불과한 타율에다 번번히 공격의 맥을 끊는 빈타를 거듭했고, 포수 출신이기 때문에 좌익수 수비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이러자 팀내에서 딩고의 아성과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들은 주니치가 올시즌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종범을 1군으로 올려야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호시노 감독을 압박했다.

그 결과 이종범은 4월 22일 마침내 다시 1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후 공교롭게도 이종범의 복귀가 이루어지자마자 주니치는 5월초부터 10연승을 하며 잠깐 동안이었지만 1위로 나서기는 등,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런 상승세인 팀분위기 덕분에 이종범은 이후 전반기내내 1군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이종범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건 후반기 시작부터였다.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자마자 이종범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주니치 공격의 첨병노릇을 했다. 이때 이종범은 한때 타율이 2할9푼대까지 올라가며 데뷔 첫 3할을 노릴 정도로 맹타였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후 이종범은 다시 타격슬럼프에 빠지며 타격이 2할5푼대까지 다시 쳐지기도 했지만 시즌 막판 다시 투혼을 발휘하며 0.275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 2000시즌 이종범 성적 : 113경기 출장, 414타수 114안타(2년연속 100안타이상), 타율 .275(리그19위), 8홈런, 37타점, 11도루(리그8위)

◆ 이종범의 문제점

종합적으로 볼 때 올시즌 이종범은 선전했다고 생각한다. 시즌 전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 정도의 성적을 올린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바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의 야구천재가 3년이 지나도록 일본야구판에서 완전히 자신의 진가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첫째로 이종범은 아직도 일본투수들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투수들과 달리 일본투수들은 이종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야구천재로 존경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이들은 이종범이 다소 약점을 보이는 몸쪽을 집중공략하고 거리낌없이 빈볼성 공을 던진다. 이런 이들의 투구패턴에 이종범은 아직도 말리고 있다.

일본데뷔 첫해 데드볼로 인해 큰 부상을 당한 후 몸쪽 공에 더욱 부담이 커진 듯 보인다. 또한 이종범은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고 있고, 일본투수들의 완급조절에도 익숙치 않은 모습이다.

둘째로 이종범은 일본야구에도 완전히 적응히 못했다. 철저한 관리야구인 일본야구 스타일(특히 호시노 감독은 더욱 선수들에게 간섭이 심하다)은 해태시절 혼자 야구하다시피했던 이종범에게는 익숙치 않아 보인다.

현재 주니치에서 이종범은 포지션이 좌익수로 바뀌었고 누상에서도 벤치의 사인을 따라야한다. 이외에도 타순이 바뀌는 건 다반사고 어쩔때는 스타팅 여부도 들쭉날쭉이다. 이런 여러가지 면이 스타성이 강하고 화려한 플레이를 선호하는 이종범에겐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 그래도 이종범!

요즘 이종범이 한국야구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이대로 그가 한국으로 U턴한다면 결론적으로 이종범의 일본행은 실패로 끝나는 셈이 된다.

이것은 이종범 개인의 실패를 떠나서 한국야구의 실패로 볼 수 있다. 만약 한국의 최고타자였던 이종범의 해외진출이 큰 성과없이 끝난다면 앞으로 다른 한국 타자들의 일본행까지도 매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종범 본인 역시도 일본에서 계속 뛰겠다는 각오가 결연하다.

2000년의 시련을 이종범은 이겨냈다. 실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했고, 또 말해주었다. 앞으로도 이종범에게 필요한 것은 실력 뿐이다. 주니치가 어떤 용병을 데려오든지 관계할 바가 아니다. 이미 메이저리그 3할타자였던 딩고를 이긴 이종범이다. 본인의 말대로 '이종범다운 플레이'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불의의 부상으로 좌절했던 첫 해, 최악의 부진에 허덕였던 둘째 해, 견디기 힘든 시련을 딛고 가능성을 보인 셋째 해에 이어, 4년째의 이종범을 기대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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