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대양 6대주에 투자하는 ‘김 여사’ …호주달러예금ㆍ딤섬본드 인기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지난 8일 서울 여의도동 현대선물의 10층 세미나실. ‘외환거래(Foreign ExchangeㆍFX) 마진과 해외선물 거래’라는 주제의 무료 강의를 듣기 위해 개인투자자 12명이 모였다. 강의 제목만 봐도 만만찮은 내용일 터인데 양복 차림의 회사원 이외에 파마 머리의 중년 주부들도 눈에 띄었다. 강사로 나선 방안직 현대선물 대리는 “FX 마진거래는 손실 부담이 큰 초고위험 상품이기 때문에 철저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강자들은 어떻게 거래하는지, 수수료는 얼마쯤 되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강의에 열중했다. 주부 민모(55)씨는 “오전에 주문을 걸어 놓고 집안일을 본 다음 오후에 확인하는 식으로 투자한다. 리스크가 비교적 큰 상품이라지만 요즘 수익 낼 곳이 마땅치 않아 1000만~2000만원으로 모험을 해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저금리 기조와 부동산 침체가 지속되면서 달러·엔 등 외국 돈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 개인투자자가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이른바 ‘김 여사’라고 불리는 전업주부가 상당수다. ‘김 여사’는 증권가에서 만든 조어(造語)다. 외화 투자에 적극적인 일본 주부들을 통칭하는 ‘와타나베 부인’의 한국 버전이다. 김 여사의 투자 대상은 전 세계다. 이들이 관심을 둔 해외 자산과 통화 등 외화 투자상품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해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진 외화 투자 상품은 FX 마진거래다. 이 상품은 두 국가 간의 통화 교환 비율인 환율을 기초자산으로 한다. 김명권 이트레이드증권 FX마진팀장은 “이종(異種) 통화 간의 환율 흐름을 예측해 어느 한쪽 통화가치의 상승 또는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5년 개인투자자의 참여가 허용된 이후 거래액이 급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FX 마진 거래대금은 총 6654억원으로 전년 대비 42% 급증했다.

FX 마진거래는 와타나베 부인의 단골 투자법이다. 거래 방법을 보면 증권사ㆍ선물회사 등의 중개회사에 소액의 증거금(보증금)을 내고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설치한 뒤 온라인으로 증거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외화를 거래할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주 거래되는 미국 달러ㆍ영국 파운드ㆍ유로ㆍ엔ㆍ호주 달러ㆍ뉴질랜드 달러ㆍ캐나다 달러ㆍ스위스 프랑 등 8가지 통화 중 2가지에 한꺼번에 투자할 수 있다. KR선물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거래량이 많고 변동성이 크지 않은 통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화는 거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통화로 환전한 뒤 거래해야 한다.

미 달러화와 엔화의 교환 비율에 투자한다고 가정해 보자. 엔화 약세가 예상되는 경우엔 달러를 샀다가 팔면 된다. 예를 들어 엔화가치가 달러당 80엔일 때 10만 달러를 투자한 뒤 예상대로 엔화가치가 달러당 81엔으로 떨어졌을 때 판다면 10만 엔만큼의 차익이 난다. 달러가치는 그대로 10만 달러이지만 엔화로는 810만 엔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10만 엔을 달러로 환산한 약 1200달러를 수익금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환율 방향을 맞히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손실을 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위험투자라고 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점을 고려해 지난 5일부터 FX 마진거래의 최소 거래 단위 10만 달러에 대한 증거금을 기존 5000달러에서 1만 달러로 두 배로 올렸다. 해외통화선물은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 등 해외 선물시장에 상장돼 있다. 통화선물은 미래 특정 시점의 예상 환율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설계했다. FX 마진에 비해 증거금 비율이 낮은 게 강점이다. 그러나 종목이 다양하지 않은 데다 거래량이 부족해 개인투자자는 다양한 통화에 투자하기 어렵다. 직접투자가 부담스럽다면 통화선물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간접투자를 할 수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는 우리자산운용에서 내놓은 두 종류의 통화선물이 있다. ‘KOSEF 미국달러선물 ETF’는 달러가 강세일 때 수익을 내고 ‘KOSEF 미국달러선물 인버스 ETF’는 원화가 강세일 때 수익을 낼 수 있다.

전통적인 외화 투자 방법인 외화예금도 지난해 관심을 끌었다. 외화예금은 투자 대상국의 통화가 원화보다 강세를 보이면 이자와 함께 환차익까지 볼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원화가 강세라면 환차손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월말 314억3000만달러로 2010년말(232억8000만달러)에 비해 35% 늘었다.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원화가치가 급락할 것을 우려한 자금이 미 달러에 몰린 때문이다. 특히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이 7일 공개석상에서 “외환위기 방어막을 형성하기 위해 내국인의 외화예금 유치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금융업계에서는 우대금리 혜택이나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내 외화예금의 80%는 미 달러에 투자돼 있다. 하지만 미 달러 예금은 안전하긴 한데 금리가 낮다는 단점이 크다. 은행별로 다르지만 보통 1년 만기 정기예금을 기준으로 연 2% 안팎의 금리가 나온다. 원화로 투자하는 일반 정기예금 금리(연 4%)의 절반 수준이다. 물론 금리가 높은 국가도 있다. 외환은행의 경우 호주 달러 예금은 연 5.8%, 뉴질랜드 달러 예금은 연 4.5%를 보장해 인기다. 이 은행에 예치된 호주 달러 예·적금의 경우 지난해 말 평균 잔액이 미 달러화로 환산했을 때 7900만 달러였으나 올해 3월 들어 9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김우철 외환은행 외환업무부 차장은 “유학자금 송금이나 여행자금 예치 수요와 함께 최근 호주 달러 강세 흐름으로 투자 수요가 늘면서 예금액이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부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외화 투자 상품은 브라질ㆍ중국 등 신흥국 채권이다. 박경희 삼성증권 UHNW(초고액자산가)사업부 상무는 “브라질 국채는 환차손 위험이 있지만 연 10%대의 이자를 제공한다는 점, 중국의 위안화 표시 채권(딤섬본드)은 위안화 절상에 따른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액 자산가들이 많이 투자한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증권사에서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판매된 브라질 국채는 총 1조7000억원을 넘는다. 딤섬본드는 증권사에 돈을 맡기면 상품을 사서 개인 계좌에 넣어주는 신탁 방식으로 직접 투자할 수 있다. 삼성증권은 중국 공기업 채권을 판매한 데 이어 현재는 신용등급 A-로 연 수익률 4%대의 일본 기업 딤섬본드를 팔고 있다. 공모펀드 중에도 딤섬본드에 투자하는 펀드가 있다. 하나UBS딤섬펀드는 전체 자산의 90%를 위안화 표시 채권에 투자해 이자 수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노린다.

해외 주식을 직접 사고파는 투자자도 많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08년 47억 달러였던 해외주식 직접투자 금액은 2009년 97억 달러, 2010년 125억 달러에 이어 지난해 118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올 2월에는 22억 달러로 지난해 이후 월별 기준 최대 금액을 경신했다. 신한금융투자 글로벌사업부의 유진관 팀장은 “경기가 회복 국면인 미국의 대표기업들과 재정위기로 저평가된 유럽 기업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많았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는 11개 증권사가 전 세계 20~30개국 주식시장 상장 종목에 대해 실시간 거래서비스를 제공한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공격적인 투자자라면 해외주식이나 FX 마진에 도전해 볼 수 있겠고, 위험을 덜 선호하는 투자자는 브라질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 등의 국채에 투자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