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프로야구결산] ②위기의 한국 프로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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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기분이 나겠습니까"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어느 팀의 6년차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빈 관중석을 보며 내뱉은 말이다.

새 천년 첫 프로야구는 예전처럼 영광의 우승팀을 가리고 끝났지만 출범 20년을 불과 1년 앞둔 한국 프로야구 현실을 정확하게 꽤뚫은 말이었다.

점점 줄어드는 관중에 대형 스타플레이어는 없고 관중보다는 순위 싸움이 우선인 구단들과 이들의 마케팅력 부재 때문에 관전 재미는 더욱 반감됐다.

95년 한때 500만 관중을 자랑했던 한국 프로야구의 새천년 첫해의 자화상이다.

프로의 원동력은 관중이다.

5년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세에 있던 프로야구 관중은 지난해 모처럼 상승세로 돌아서 올해 프로야구 관계자들을 기대에 들뜨게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정규리그에 250만7천549명이 야구장을 찾아 지난해 322만624명 보다 22% 줄었다.

팀당 경기수가 132경기에서 133경기로 더 늘었는데도 관중은 감소한 것이다.

관중이 없는 프로야구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관중이 없는 그라운드에서 경기는 선수들만의 리그가 될 뿐이다.

정규리그의 흥행 부진은 포스트 시즌에서도 이어졌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관중은 게임당 평균 2만여명에 달했지만 올해는 1만2천여명 남짓했다.

수원구장에서 열린 올해 한국시리즈 1,2차전에서는 역대 시리즈 게임당 최소 관중수를 연일 갈아 치우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관중수가 줄어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주식과 벤처 열풍으로 프로야구 보다는 돈 벌기 게임이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한 이유도 있지만 과거 만큼 대형 스타가 없다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요소다.

박찬호(LA 다저스)의 생중계를 보기 위해 새벽잠을 설치는 야구팬들이 있고 박의 중계권을 따기 위해 방송사들이 돈 싸움을 벌이는 것을 감안하면 야구 자체에 대한 인기가 줄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만수, 최동원, 선동열, 이종범 등과 같이 골수 팬들을 몰고 다니는 슈퍼 스타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지난해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으로 야구 열풍을 주도했던 이승엽(삼성)의 부진도 관중 감소에 한 몫 했다.

타격왕 박종호와 85년 이만수 이후 15년만에 탄생한 포수 출신 홈런왕 박경완(이상 현대)이라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지만 이들 선수들의 구단은 스타 마케팅 보다는 팀 성적을 우선했다.

결과는 홈구장에서 2차례의 한국시리즈 최소 관중 기록이라는 수모였다.

슈퍼 스타가 없으면 경기라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각 구단 코칭 스태프들은 프로야구 발전이라는 대의 보다는 성적이라는 사소한 이익에 집착했다.

연봉으로 먹고 사는 프로 관계자들이 팀 성적을 도외시 할 수는 없지만 정도의 문제였다.

신기록 수립을 앞둔 선수를 교체하거나 큰 점수차의 리드에서 더 확실할 승리를 위해 4번 타자에게 번트 사인을 내는 경기를 돈내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프로야구를 주관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8개 구단 관계자, 코칭 스태프, 선수들은 무엇을 위해 프로야구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한국시리즈가 마지막 7차전까지 열리자 관중이 들지 않기로 유명한 수원구장도 2차례(6,7차전)나 만원을 기록한 것만 봐도 아직 가능성은 남아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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