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태 중간정리] 정부, 일관성 없이 혼선 부추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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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태가 급류(急流)를 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도대체 어찌 돼가는지를 놓고 보자면 영 헷갈린다.

헷갈리게 돼 있는 것이, 실은 정부.채권단.현대 모두가 시장상황에 쫓기며 하루 하루 넘어가고 있지 질서 정연한 처리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현대건설이 1차 부도를 맞은 지난달 30일부터 현대 처리 방침에 대해 '원칙대로' 라는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대외용이지, 원칙대로 대기업을 처리해 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어느날 '원칙대로' 라니 그처럼 모호한 기준도 다시 없다. 주채권은행에선 이를 두고 "현대 처리가 핑퐁 게임처럼 흘러간다" 는 불만이 나왔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뚜렷한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1차 부도 이후 지금까지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은 현대 처리를 한 방향으로 압축해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헷갈리게 만들었고, 은행측의 입조심은 뚜렷해졌다.

현대도 자구안을 둘러싸고 정몽헌 회장, 계열사 사장, 구조조정본부의 말이 다 달라 아직도 교통정리 중이다.

어쨌든 이제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현대가 자금을 못 막으면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 절차를 밟아 경영권을 박탈하고 새 경영자를 선임해 기업은 살려간다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 정부 안에서의 일치된 '확신' 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의 현대사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중간정리' 를 해본다.

현대건설의 해법이 하루에도 몇번씩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현대건설의 1차 부도를 즈음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정부 관계자의 발언은 어제 방침이 오늘 뒤집어지는 식으로 제각각이었다.

현대건설 처리를 놓고 정부 안에서 의견 통일이 안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시장에서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선 출자전환이냐, 법정관리냐부터가 불분명하다.

지난달 16일 진념(陳稔) 재정경제부장관은 "현대건설의 출자전환은 없다" 고 못박았다. 4대 그룹 계열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종전의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그전까지 "불가피한 경우 출자전환도 고려해야 한다" 던 금융감독위원회도 이 때는 "출자전환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며 한 목소리를 냈다.

정부 방침에서 제외된 듯했던 출자전환은 그러나 지난 3일 퇴출기업 발표 때 현대건설의 판정을 '보류' 하면서 되살아났다.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3일 "현대건설이 부도나면 즉시 법정관리에 넣겠다" 고 말했다. 금감원 정기홍 부원장은 "사실상 '조건부 퇴출' 을 의미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법정관리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해석됐다.

李위원장의 이 발언은 그러나 이틀 뒤인 5일 "건설업 기반 상실 등 법정관리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현대 대주주의 감자.출자전환 동의서를 요구했다" 며 '출자전환' 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이에 앞서 陳장관은 지난 3일 금감위원장의 '사실상 법정관리' 발언 직후 "현대 가족들이 합심하면 현대건설을 살릴 수 있다" 고 현대의 자구노력을 강조했다.

재경부 조원동 정책조정심의관은 "출자전환은 사실상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이라며 "법정관리로 곧바로 갈 경우에는 경제 전반에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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