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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이거 타야…" 여대생들 마시는 술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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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만든 폭탄주 ‘소맥’이 대학가에서 인기다. 지난 8일 서울 홍익대 앞의 한 주점에서 홍익대 학생들이 소맥잔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최예린(24), 정효선?한혜진·류지인(20)씨. [김도훈 기자]

“소맥 두 병에 과일 안주 한 개 주세요~.”

 16일 오후 8시 서울 서교동 홍대입구 앞 P주점. 가게에 막 들어온 여대생 두 명이 주문한 것은 ‘소맥(소주+맥주)’ 폭탄주였다. 지난해 1월 문을 연 이곳에선 폭탄주를 500ml짜리 갈색 유리병에 담아 4500원에 판다. ‘제조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폭탄주를 가게 주인이 직접 ‘담가’ 내놓은 것이다.

손님 정예진(24·홍익대)씨는 “폭탄주는 이렇게 마셔야 맛있다”며 술을 잔에 따르더니 공중에서 휘휘 돌려 술잔 속에 ‘회오리’를 만들었다. 사장 김은영(33)씨는 “최근 대학생들이 폭탄주를 즐겨 마신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입소문 덕분에 대학생 손님의 절반은 폭탄주를 찾는다”고 말했다.

 대학가에 ‘폭탄주’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대학생 사이에서 폭음의 상징으로 꼽혔던 폭탄주가 수년 전부터 대중화한 것이다. 홍익대 인근에는 폭탄주 전문 술집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H주점에선 330ml 잔에 담은 폭탄주를 소주 비율에 따라 1호(소주 1잔+맥주, 3000원), 2호(소주 2잔+맥주, 4000원) 식으로 구분해 판다. 이곳에서 만난 정혜지(25·홍익대)씨는 “소주만 마실 때보다 덜 쓰고, 먹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열린 신입생 환영회에서도 폭탄주는 대세다. 합창동아리 회장 김혜린(21·연세대)씨는 “요즘 후배들에게 억지로 독한 술을 먹이면 동아리에서 다 떠날 것”이라며 “소주 대신 폭탄주로 환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프랑스 유학생 조프로이(23)는 “폭탄주 문화를 한국에서 처음 배웠다”며 “어느 모임에서도 폭탄주를 잘 마시면 환영받는다”고 말했다.

 막걸리를 고집하는 고려대도 예외는 아니다. 서문욱(24·고려대)씨는 “신입생 환영회 때 막걸리를 큰 그릇에 담아 마시는 ‘사발식’은 여전하지만 2차부턴 막걸리 대신 폭탄주를 마신다”고 말했다.

이를 노린 업체들의 마케팅도 활발하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부터 ‘소맥 자격증’ 온라인 이벤트를 열고 있다. 나만의 소맥 폭탄주 제조법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선발된 사람에게 자격증을 주는 것이다. 대선주조는 지난달 초 폭탄주를 정확하게 만들 수 있도록 계량컵 1만 개를 만들어 대학가 술집에 나눠주기도 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대학생만의 코드가 사라지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라며 “음주문화도 점차 기성세대의 문화를 닮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같은 트렌드가 과도한 음주문화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해 반복되는 캠퍼스 음주 사망사고에 폭탄주가 한몫한다는 것이다. 교내 절주(節酒) 동아리 회장인 임민경(21·이화여대)씨는 “한 잔 마셔도 될 것을 폭탄주 때문에 더 마시는 경향이 있다”며 “절주 서명 캠페인을 펼치는 등 폭탄주를 자제하도록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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