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vs 자만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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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호 34면

나의 첫 서울생활은 1980년대 중반, 다음은 90년대 말, 이번이 세 번째다. 정치도 거리 풍경도 한국의 변화와 발전은 눈부시고, 언어조차 다소 바뀐 것 같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전화안내 여성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쉰 세대인 나는 당혹스럽다.

80년대에는 이런 표현을 별로 듣지 못했다. 당시 한 백화점 여직원들이 일본처럼 웃는 얼굴로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자 ‘위화감이 든다’는 비판 보도가 있었을 정도다. 지금은 대형 점포의 남자 직원들도 대부분 이런 인사법을 실천하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사랑한다’는 영어 표현과 고객 존중의 일본식 예의가 접목된 것일까. 예전에 한국 친구와 서양 영화를 보다 ‘사랑한단 말, 우린 영 쑥스러워서…’ 하며 마주 웃은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드라마나 실생활에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가끔 하는 모양이다. 역시 한국은 일본보다 변화가 빠르다.

2007년부터 2년간 나는 베이징에서 근무했다. 올림픽을 사이에 둔 그 시절, 거대한 몸집의 중국이 갖가지 모순으로 삐걱거리면서도 발전하는 드높은 기운을 날마다 느꼈다.
일본의 유명한 정치학자가 베이징에서 강연을 했다. “근대 세계사를 보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기세 높은 신흥국이 많다. 20년 전에는 낙오됐었으나 눈부시게 발전해 세계 최강국에 도전하겠다는 기세로 의기양양하고 자부심이 강하다. 그렇지만 세계의 체제에 대한 불만과 콤플렉스도 강해 불안정한 면이 있다”고. 그 다음 말은 나의 예상대로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독일, 그리고 일본이 그랬다. 군사력에 의한 패권과 내셔널리즘으로 치달았던 전전(戰前) 일본의 어리석은 실패를 중국은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계 각국의 중국에 대한 우려를 설교하기보다 자국 일본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전달한 것은 효과적인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문화 관계자를 자주 만난다. 연예, 음악, 미술 등 세계적으로 한국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옛날에는 프랑스나 일본에서 책을 구입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 것이 제일이란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하는 한국의 문화계 간부. 이에 일본 원로 문화인이 “자신감은 좋지만, 외국에서 배우는 자세가 어느 세상이나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으나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문화 이외의 분야에서도 간혹 ‘이제 배울 게 없다’는 분위기가 보인다.

80년대의 일본은 참 잘나가던 시기였다. 자동차와 금융, 그리고 과학기술에서 세계 정상에 육박하며 미국의 부동산과 문화산업을 사들였다. 90년대 초에는 개도국 지원액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냉전에서 소련을 이겼다. 그러나 진정한 승자는 일본이 아닌가?’ 하고 반문했다. 넓은 땅덩어리의 미국 전체 지가(地價)보다 일본의 지가가 더 비싸다고 자랑스레 말하고, 교육도 미국식은 틀렸다며 우습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제일이다. 외국에서 배울 게 없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공리적으로나 좋은 처세술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 당시 일본의 어리석음을 한국이 되풀이할 리는 없을 것이다. 중국이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을지는 차치하고, 한국에 대해서만큼은 낙관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후 1년. 수많은 한국 국민 여러분이 따뜻한 지원을 해주신 데 대해 다시 깊이 감사드린다. 덕택에 복구 및 부흥이 진전되고 있다. 관광, 유학을 포함해 일본에 많은 분들이 와주시는 것이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점 아울러 부탁드리고 싶다.



미치가미 히사시(道上 尙史) 1958년 생. 도쿄대법대 출신 주한 일본대사관 참사관을 지냈고 2007~09년 주중 일본대사관 공사(공보문화원장)을 한 뒤 이번에 다시 한국에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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