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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큰 사건 터질 때마다 한국 연관성부터 따지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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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호 16면

최정동 기자

중앙SUNDAY는 오늘자로 지령 262호다. 여기서 1만 빼면 ‘사진과 함께 하는 김명호의 중국근현대’ 연재횟수가 나온다. 최장수 기획이다. 필자인 김명호(62·사진)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는 본지 사정으로 인해 쉬었던 2007년 추석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등판한 대표 선수다. 연재 초반 사진 한 장과 900자 남짓의 사진 설명으로 출발한 ‘중국근현대’는 어느덧 열성 인문학 독자를 거느린 간판 연재물로 자리 잡았다.

대표 필진 2인

김 교수는 다음 달 이 연재물을 새롭게 다시 쓴 중국인 이야기 1, 2권을 낸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로 1990년대 중반 국내 독서계를 뒤흔들었던 한길사에서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인문학 저작으론 파격적인 선인세(2억원)를 제시하고 김 교수를 붙잡았다. 15일 만난 김 교수는 “2권 원고를 쓰던 중 실수로 5만7000자 분량을 다 날려 다시 쓰는 중”이라며 껄껄 웃었다. 그는 ‘중국근현대’ 연재를 하던 중 컴퓨터를 배웠다. 일명 ‘독수리타법’으로 원고지 10장을 입력하는 데 2~3시간은 족히 걸리지만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이 생기니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만 5년간 체력적·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았나.
“힘들면 이렇게까지 못 썼다. 연재하면서 쓰기 싫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주변에서 중국 얘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글이 쓰고 싶어졌다. 글이 별 건가. 머릿속에서 부지런히 생각해뒀다가 지명과 인명 등 세부사항을 확인하고 일단 써내려 간다. 그런 다음 많이 고친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글은 고칠수록 좋아진다’고 했다. 수십년간 머릿속에 있던 내용을 한 번도 글로 풀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자주 냈던 사람들보다) 더 쉬웠는지 모르겠다. 체력은 별 걱정 없다. 대학 때 스키 선수도 했다.”

-독자가 보낸 e-메일 중 ‘방대한 자료와 지식에 중국 사람이겠거니 여겼다’는 내용이 있었다.
“현장에 많이 간 건 사실이다. 공부해야겠다든가, 자료를 모아 나중에 책을 내야겠다는 식의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냥 중국을 둘러싼 상황이 어찌 돌아가나 궁금했다. 80년대부터 주말이면 홍콩과 대만에 갔다. 가서 일주일치 신문과 잡지를 탐독했다. 천안문 사태(1989) 때도 홍콩·대만으로 가 며칠씩 머물렀다. 자오쯔양(趙紫陽·조자양), 양상쿤(楊尙昆·양상곤), 리셴녠(李先念·이선념) 등의 얼굴이 나온 신문을 들고 홍콩 관상가한테 가서 ‘이 중 누가 제일 운이 좋을 것 같으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관상가 대답은 ‘다 좋다’는 거였다.”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소련이 붕괴한 90년대 초엔 다들 ‘중국도 곧 망한다’고 했다. ‘뭔 소리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권인데’라고 했다가 빈축도 많이 샀다. 우리 관점, 기준에서만 생각하면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없다. 난 요새 중국 관광객이 우리나라로 몰려오는 것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명품 값이 중국보다 싸고 그들의 생필품 질이 우리를 못 따라와서 그렇지, 몇 년 지나면 유럽으로 몰릴 거다.”

-매회 등장하는 사진 자료는 어떻게 구하는가.
“(손에 들고 있던 갤럭시노트를 보여주며) 이 안에만 중국 사진 자료가 1318장 들어 있다. 예전에 홍콩에서 출판 관련 일을 했다. 그때 출판사 편집자들이 드나드는 골동품상을 알게 됐다. 해외 특파원들도 와서 사갈 정도로 귀한 사진 자료가 많았다. 이젠 현지 친구들이 괜찮은 사진이 생기면 알아서 보내준다. 난 사진부터 봐야 (쓰려고 하는 내용에 대해) 믿음이 생긴다. 국내에 중국 전문가들이 많은데, 1차 자료를 안 본 사람들이 꽤 많다. 일기나 편지, 사진 등 1차 자료를 구해봐야 진짜 모습이 보인다. 같은 사건을 두고 8명의 일기를 비교해 보라. 8가지 다른 시각이 나온다. 그게 흥미로운 거다.”

-중국 역사를 쉽게 풀어준다는 평이 많았다. 비결은.
“중국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이게 우리랑 어떤 연관이 있을까부터 곰곰이 생각한다. 젊은 시절부터 그랬다. 내 안에서 완전히 소화된 게 아니라 별 것 없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뒤져서 쓰면 글이 어려워진다. 독자를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거 건방진 거다.”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을 접해 보니 어떤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눈 먼 사람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만지는 부분에 따라 다르게 묘사될 거다. 분명한 것 하나는 중국은 엄청나게 역동적인 나라라는 거다. 19세기부터 100여 년을 혁명과 반(反)혁명,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았다. 사람들의 이합집산이 심하고 하루가 다르게 적과 동지가 바뀌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변신에도 능하다. 쓸데없이 고집 안 부리고 바꿔야 할 때가 되면 확 바꾼다. 여러 분야에 걸친 대가가 있는 것도 중국의 다양성이다. 얼마 전 피카소 그림을 누르고 경매 총액 1위를 기록한 장다첸(張大千)을 보라. 화가일 뿐 아니라 빼어난 시인이고 글씨도 잘 썼다. 시(詩)·서(書)·화(畵)·각(刻)이 하나가 된 사람, 고도의 교양인이라 높게 평가받는 거다. 중국엔 그런 사람이 많다. 송나라 왕안석은 정치가지만 위대한 서예가였고, 소동파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면서 최고의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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