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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집도, 양식도 없다…숨겨둔 오두막이 가족의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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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메모리 보이
윌 위버 지음
박중서 옮김, 뜨인돌 240쪽, 1만2000원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은 화산재가 일상 생활을 어느 정도 뒤흔들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책의 배경은 캐스케이드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미국 전역을 뒤덮은 2018년. 화산재가 하늘과 땅을 뒤덮으며 농산물 재배는 중단되고, 오염물질 배출을 막기 위해 자동차 운행과 화석 연료를 사용한 발전도 제한된다. 치솟는 물가에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먹을 것을 찾아 도시를 떠나 몰려드는 피난민의 행렬로 평온했던 시골도 약육강식의 공간이 된다.

 열여섯 소년 마일스 뉴웰 가족도 미니애폴리스를 떠나 미시시피 강가의 오두막 별장으로 피난길에 오른다. 자동차를 굴릴 수 없어 마일스가 만든 4인승 자전거 ‘앨리 프린세스’를 타고 이동하는 ‘고난의 행군’이다.

 고생 끝에 별장에 도착한 뉴웰 가족.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상황은 암담하다. 총으로 무장한 피난민 가족이 별장을 점거한 상태. 도무지 방을 뺄 생각이 없는 이들과의 별장 쟁탈전을 고민하던 뉴웰 가족은 전투를 포기하고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구술사 숙제를 위해 마일스가 노인 요양원에서 만났던 커츠 노인의 숨겨둔 오두막을 찾기로 한 것이다.

 ‘메모리 보이’로 불릴 정도로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마일스에게 의존한 여정은 막막함 그 자체다. 하지만 60년간 숲 속에서 수렵과 채취로 생활했던 거츠 노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일스에게, 뉴웰 가족에게 등대이자 나침반이 된다.

 책은 분업과 정보화시대에 자급자족의 능력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내리치는 죽비와 같다. “그 잘난 놈의 컴퓨터에만 기댄 탓에 상황이 안 좋아질 때 맨손으로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능력이 없다”며 “어떻게 해야 먹을 것을 장만할 수 있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지 모른다”는 거츠 노인의 비판에 정신이 번쩍 든다.

 거츠 노인의 오두막을 찾은 뉴웰 가족은 이제 염소를 키우고 물고기를 잡고 블루베리를 따먹으며 통나무집을 짓게 될 터. “숲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땅이 나에게 주는 것을 갖는 방법을 배우면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츠 노인의 말대로 자족의 기쁨도 누릴 것이다. 이들의 흥미진진한 숲 생활기를 다룬 후속편 『생존자들』의 번역·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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