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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개혁·개방은 사이클론의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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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세인

미얀마에 개혁·개방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이가 우 테인 세인(66) 미얀마 대통령이다. 안경을 쓴 채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는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인생 역정이나 정치적 성향뿐 아니라 군사정권(junta)의 충복에서 ‘미얀마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로 변신한 계기도 베일에 가려 있다.

 뉴욕 타임스의 해외판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5일 2008년 5월 미얀마를 강타한 사상 최악의 사이클론 나르기스(Nargis)가 세인 대통령을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게 한 ‘정신적 방아쇠(mental trigger)’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그는 재해 대책을 총괄지휘했다. 헬리콥터를 타고 현장을 누볐다. 나르기스가 할퀴고 간 미얀마는 절망의 땅으로 변해 있었다. 세인의 고향인 굔쿠(Kyonku) 지방도 큰 피해를 보았다. 여기서 그는 가난한 나라의 참담한 현실을 절감했다. 미얀마방재연구기관 책임자인 우 틴 마웅 탄은 “나르기스 사태는 세인 대통령이 구체제의 한계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싱가포르·미국 등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 이를 통해 미얀마의 경제적 후진성을 알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IHT는 분석했다. 세인은 군사정권에서도 군 출신들보다는 유화적이었다. 마약 생산 지대이자 소수민족 거주 지역인 미얀마 북부을 관장할 때는 현지인 사이에서 가장 덜 잔인한 인물로 통했다. 불교 승려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렴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부인과 세 딸 모두 소박하게 살고 있다.

 군사정권의 다른 고위 지도자와 달리 그는 군부에 권력 기반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야심 있는 인물로 비치지도 않았다. 수도 양곤에서는 그가 은퇴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측근들도 세인이 결코 대통령직을 추구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의 20년간 미얀마를 통치하다 지난해 물러난 군정 최고지도자 탄 슈웨 장군은 세인을 대통령으로 밀었다. 이는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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