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부개척시대] 中. 생태계 살리기

중앙일보

입력

10월 17일 중국 시베이(西北)항공 여객기가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상공에 이르자 창 밖으로 거대한 황토고원이 눈에 들어왔다.

황허(黃河)에 침식돼 만들어진 대협곡은 하늘에서 볼 때 장관이었다. 그러나 정작 땅 위에 내려 살펴본 현지 실정은 낭만적인 풍경과 사뭇 달랐다.

메마르고 건조한 토양에선 푸석푸석 먼지가 날려 불모지란 단어를 연상시켰다. 란저우의 연평균 강수량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로 최근 기록이 3백30㎜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 전체 평균(6백㎜)의 절반을 약간 웃돈다.

그러나 숲이 없는 황토고원은 적은 양의 비만 내려도 토양이 유실되는 것은 물론 가옥을 삼키는 산사태가 일어난다.

이같은 자연재해 악순환이란 고리를 끊기 위해 황토고원을 푸른 숲으로 바꾸는 대역사가 올해 시작됐다.

비탈진 산기슭에 있는 밭의 경작을 중단하고 대신 나무를 심어 물과 토양의 유실을 막는다는 이른바 '퇴경환림(退耕還林)' 작업이 한창이다.

인프라 건설과 함께 서부 대개발의 양대 축을 이루는 생태환경 살리기의 핵심 사업이다. 치수(治水)로 5천년 중국 문명의 서막을 열었던 하(夏)왕조 우(禹)임금의 자손들이 현대판 치산치수에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 오후 중국 최대 감자 생산지인 란저우 서남부 딩시(定西)현의 퇴경환림 현장인 주화거우(九華溝)를 찾았다.

"수분과 토양 유실을 막아 수려한 강산을 만들자" 는 구호를 새긴 탑이 보였다. 지난 4월 보리 등 곡물의 경작을 중단하고 측백나무와 은행나무 등 어른 키만한 내한성 나무들을 빼곡이 심었다.

빗물을 저장할 거대한 물탱크를 여기저기 마련한 게 인상적이었다. 딩시현의 퇴경환림 지휘부 차오파쿠이(喬發奎)과장은 끝없이 내려다 보이는 황토고원 협곡을 가리키며 "2050년까지 이 일대가 모두 푸른 숲으로 바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업 때문에 힘들게 일군 경지를 포기해야 하는 농민의 반발은 없는 것일까. 주화거우 인근에 사는 농부 류쉐즈(劉學智)를 만났다.

그는 한마디로 "대환영" 이라고 말했다. 21무(畝.1무는 6백60㎡)의 경작지를 보유했던 그는 8무의 토지에서 경작을 포기하는 대가로 8백㎏의 보리와 1백60위안(약 2만원)의 현금보상, 그리고 묘목비 4백위안(약 5만원)을 받았다.

중국 당국은 경작지에 나무를 심는 농민에게 2008년까지 한시적으로 1무 당 연간 보리 1백㎏과 20위안의 현금, 50위안의 묘목비를 지급한다.

나무는 경지 소유자들이 자발적으로 심게 하고 그곳에서 나온 풀은 소.양 등의 먹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강압적으로 경작지를 빼앗는 대신 농가소득을 올려주며 삼림녹화에도 참여시키는 '윈윈 전략' 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방법으로 딩시현은 올해까지 4만무의 경작지를, 2008년까지는 1백30만무의 경작지를 숲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딩시현 당위원회의 왕중친(王仲勤)선전부장은 "황허 유역 퇴경환림으로 황사가 줄면 한국에도 좋은 일이니 한국도 참여하는 게 좋지 않으냐" 며 반응을 살폈다. 이같은 나무 심기는 2050년까지 계속되는 장기 사업이다.

중국 당국이 이처럼 나무 심기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간단하다. 간쑤성을 흐르는 9백13㎞의 황허 구간에서 해마다 침식되는 토양 면적은 무려 12만㎢. 이는 황허 유역 전체 침식면적의 87%를 차지한다.

또 매년 황허가 운반하는 모래(16억t)의 3분의1 가량이 바로 이 지역의 것이다. 삼림으로 덮인 면적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간쑤성의 삼림 비율은 중국 전체 평균의 3분의1에 지나지 않는 4.33%. 그러나 서부의 여타 다른 성들은 형편이 더욱 나쁘다. 신장(新彊)이 0.79%, 칭하이(靑海)성의 경우엔 0.35%에 불과하다.

삼림이 희박하니 수토가 유실되기 일쑤고 이는 곧바로 사막화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중국이 인프라 구축과 함께 퇴경환림.사막화 방지를 골자로 하는 생태환경 개선을 서부 대개발의 주요 사업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허는 고대로부터 계속된 토사 유입 때문에 누런 강이란 뜻의 이름을 얻었다. 2050년 퇴경환림 사업이 끝나고 토사유입이 크게 줄면 강 이름을 푸른 강이란 의미의 칭허(靑河)로 고쳐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특별 취재팀>

유상철 베이징 특파원
장세정 국제부 기자
안성식 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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