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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판교 신도시 약(藥)인가 독(毒)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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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藥)
인가 독(毒)
인가 -. 건설교통부와 여당이 유력한 신도시 후보인 판교를 놓고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다. DJ정부 경제정책의 두 축 가운데 벤처쪽이 흔들리고 있어 경기를 살릴 구원투수는 건설쪽이 유력하다. 이런 가운데 건교부가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섰고 표를 끌 카드를 건교부에 빼앗긴 여당은 제동을 걸었다. 문제는 둘 사이의 다툼이 아니다. 판교 개발이 경제에 약이냐 독이냐가 더 중요하다. 자칫 경기부양은커녕 스태그플레이션만 부채질할 것이란 우려와 거시지표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란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판교카드’의 속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건설교통부와 여당이 유력한 신도시 후보인 판교개발을 놓고 명분만 난무하는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웃목이 더워지기 전에 반짝했던 아랫목 경기마저 싸늘하게 식어가는 상황 경기에 불씨를 지필 ‘불 쏘시개’는 현재로선 건설 뿐인 것도 현실이다.

주무 부서인 건교부로선 이런 사정을 모를리 없고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 정치권인 여당보다 먼저 신도시 건설 총대를 멨다. 표밭인 수도권에서 유용하게 써 먹을 카드를 건교부에 빼앗긴 여당으로선 내심 불쾌할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여당은 당연히 건교부의 급발진에 제동을 걸었다. 대통령의 재검토지시까지 내려진 마당이니 목소리엔 힘이 더 들어갔다. DJ의 지역별 균형개발론이 앞세워졌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즉각 2~3년 내 주택난이 심해져 집값이 크게 오를 것이란 논리를 내세우며 맞서는 양상이다.

문제는 건교부와 여당의 이런 ‘명분 없는’명분 싸움이 아니다. 관변 사이드에 서는 KDI의 내년 경제전망에도 경기가 스태크플레이션에 빠져들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 특히 민간경제연구소들은 KDI보다 더 우울한 전망을 내고 있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금리와 물가는 오르는 가운데 자칫 IMF 관리체제 때보다 나라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게 뼈대다. 더구나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해외변수들이 요동을 치는데다가 진척이 없는 구조조정 등 국내요인들까지 난마처럼 얽혀있는 가운데 경기가 내리막길인 상황에서 ‘판교카드’는 자칫 저금리 - 저물가 기조를 흔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이라 신도시 개발은 경제엔 약(藥)
보단 독(毒)
이 될 것이란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 억지로 경기를 띄우기 위해 무리하게 신도시 개발을 내세웠다간 스태그플레이션만 가중시킬 것이란 걱정이다. 더군다나 판교만 놓고 보면 4만 가구 정도 건설에 그칠 전망이어서 경기부양이 될지도 의문이란 해석이다.

사실 지난 89년 2백만 호 개발 때와는 경제상황이 많이 다르다. ‘판교카드’가 거시경제 안정을 해칠 것이란 걱정은 기우(杞憂)
일 뿐이라는 것.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89년 무렵엔 경기가 과열로 치달을 때였는데 2백만 호 개발로 그렇잖아도 모자라던 제조업체의 인력난을 가중시켰고 공급능력을 뛰어넘는 목표 탓에 자재난까지 겹쳐 인플레라는 후유증을 남겼다”며 “반면 지금은 높은 분양가 탓에 미분양이 생길까 걱정이지 인플레 걱정은 접어 둬도 된다”고 반박했다.

지난 76년 이후 남단녹지로 지정, 새 집 한 채도 제대로 짓지 못한 채 움막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판교주민 입장에서 보면 이번의 개발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연말이면 건축제한 조치가 완료되는데다 난개발방지 차원에서라도 신도시 개발은 필연적이라고 판단한 것.

여기에 건설교통부가 수도권 택지난과 안정적인 주택공급을 들어 신도시 추가건설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성남시도 여기에 동조, 이번만은 개발이 굳어지는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나오기 시작한 반론은 차츰 고개를 들어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로 확산, 판교개발 반대 연합시위마저 벌어지면서 개발반대론이 우세해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수도권 인구 집중 억제시책과 지역 균형개발, 지역주민 여론 등을 들어 건교부의 밀이붙이기식 신도시 건설계획을 강하게 비판, 취소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으며 이로 인해 신도시 건설론은 일단 수면아래로 잠수했다.

일찍이 주택 수요층의 관심이 높은 판교 2백80만평의 개발에 눈독을 들인 업체는 토지공사이다. 지난 95년 신도시개발이 끝나자 새로운 개발지를 찾던 토지공사는 판교개발론을 내심 강하게 밀어붙였다. 수도권 주택난을 해소하면서도 서울권의 수요층이 대거 몰려 사업성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토지공사의 개발론은 1차로 성남시와 마찰을 빚었다. 성남시는 막대한 개발이익이 기대되는 판교개발을 토지공사에 맡길 수 없다고 판단, 독자적인 개발계획을 건교부에 제출하기에 이른다.

개발 먹거리(?)
를 놓고 토지공사와 성남시가 한판을 벌인 셈이다. 당시 건교부는 산하공사인 토지공사를 시행사로 선정하고픈 아쉬움이 있었으나 일단 개발불가론을 제기하며 택지지구지정을 불허했다. 이에 불복한 성남시는 국토연구원에 개발용역을 의뢰하기에 이르렀고 지난해 사실상 개발방향을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판교 신도시개발론이 토지공사 사장 출신인 김윤기 현 건교부장관의 토지공사 배후지원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소문이 떠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판교개발론이 갑자기 부상한 것은 난개발 해소에 쫓긴 건교부가 안정적인 주택공급과 건설경기 부양의 도화선으로 활용코자 한 데 따른 것이다.

건교부는 지난 4월 수도권 난개발이 문제화되자 서둘러 준농림지 제도의 폐지를 선언(?)
한데 이어 국토이용계획변경을 통한 준농림지의 공동주택 건설을 전면 불허했다.

가용토지를 확대하여 토지가격상승을 막고 국토를 넓게 활용코자 지난 94년 도입한 준농림지의 택지활용을 일시에 중단한데 이어 택지개발지구마저 난개발이라는 비판이 일자 택지지정을 기피한 것이다. 때문에 향후 주택공급 규모를 감안할 경우 수도권에서 총4천6백90만평 규모의 택지가 필요하나 가용택지 규모는 2천8백60만평으로 1천8백30만평의 공공택지가 부족하다는 게 건교부의 계산이다.

더구나 수도권 주택수요가 연간 20만 가구에 달하고 있으나 IMF 이후 평균 15만 가구선을 건설, 신규 입주물량이 크게 달리고 있으며 향후 경기상승에 따른 잠재 유효수요를 감안할 경우 자칫 집값, 전셋값 상승이 사회문제화될 수 있다는 게 건교부의 설명이다. 또 건설투자 감소와 부동산 경기 침체, 일감 부족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건설 및 주택건설업계의 지원책으로 신도시건설론을 내세우고 있다.

2백50만~3백만평 규모의 신도시를 3개 개발할 때 약 22조원의 투자효과와 73만명의 고용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신도시 당정회의 분위기를 보면 여당이 판교 신도시 건설을 왜 반대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이날 회의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은 김윤기 건교장관을 상대로 수도권 개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들며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해찬 정책위의장은 “건교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이 `수도권 과밀해소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는데, 20년 모시고 있지만 어떤 정책도 그렇게 강조한 것을 본적이 없다”며 수도권 과밀해소 차원의 종합적 고려를 촉구했다. 李의장은 특히 “내용은 건교부 정책인데, 형식은 국토개발연구원 검토자료 발표로 하는 등 정부가 정공법이 아니라 변형된 방법과 우회작전을 쓴다는 인상이 있다”면서 “정부가 솔직, 당당해야 한다”고 질책한 뒤 “경제개발 시대의 기조를 그대로 끌고 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판교개발에 절대 반대한다” “판교를 개발할 경우 경부고속도로가 마비 될 것” “신도시 개발이 한쪽만 편중되어 있다” “중앙정부의 치우친 정책은 정말 문제”라는 의원들의 질책이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민주당의 결사반대의 요지는 결국 수도권 집중 심화 및 공급확대책 실효로 볼 수 있다. DJ정부의 공약사항인 지방 균형발전을 위해 청와대에 자문위까지 설치해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 집중심화가 불보듯 뻔한 신도시건설을 민주당이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민주당은 앞으로도 지방자치단체의 표밭을 염두에 둔 수도권 집중 해소와 지방 균형발전책 마련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둘 것으로 보여 당분간 신도시건설계획의 긍정적 검토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현재의 주택경기침체는 수요의 부족에서 오는 현상으로 공급을 늘리는 신도시건설은 별 효과가 없다며 신도시 무용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발의 최대 쟁점은 수도권 집중 억제 시책 배치여부이다. 민주당이나 시민단체, 개발불가론자들은 인구를 비롯해 산업 등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수도권 집중 억제시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판교 신도시의 개발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들은 또 지난 89년 이래 분당 등 5개 신도시 건설시 경험했던 것처럼 대규모 택지개발과정에서 자재와 인력 등 연관분야 유입이 발생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반해 건교부 및 개발론자들은 수도권 집중은 일자리와 교육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도권 전입사유를 보면 취업(60%)
, 교육(15%)
등이 주요인이라는 것. 또 분당 등 5개 신도시 입주자의 98.7%가 서울 등 수도권내에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나 수도권 집중은 미미하다고 주장, 서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장들이 수도권 집중 투자 등을 거론하며 행정소송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추가신도시건설이 주택의 안정적인 공급에 당위론을 가진다 해도 지방소외를 가져오는 판교의 개발은 재고의 소지가 많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또 베드타운화와 교통난 가중여부도 따져봐야 할 실익부분 중 하나이다. 분당 등 5개 신도시 주민의 35%가 서울로 출근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판교 신도시를 건설할 경우 경부고속도로의 체증을 초래, 기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은 분명하다.

현재도 분당 신도시 출구역할을 하고 있는 판교인터체인지는 상습교통체증이 되고 있으며 6만여 가구를 넘어서는 용인 서북부 등지의 아파트가 대량 준공되는 2001년부터는 이같은 체증이 더욱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자족도시기능을 갖추는 문제도 쉽지 않다.분당 등 신도시 건설 때도 자족도시 기능을 강조했으나 구호에 그쳤다. 실제로 서울 등과 고리를 끊고 판교내에서 자족적인 생활을 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첨단 벤처단지조성등만으로 서울의 베드타운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의 수도권 신도시건설로 서울의 인구가 이동, 25% 이상 교통량이 분산된 것은 사실이나 수도권 유동인구를 급증시켜 결국 인프라비용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또 판교에 20만 가구를 건설, 집값 안정과 경기부양 등을 거둔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지난 89년 신도시건설은 자고 나면 집값이 천만원씩 뛰어오르는 상황속에서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그때와 매우 다르다.미분양이 8만여 가구에 달하고 있는데다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공급이 넘치고 있는 현재는 수요를 진작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민주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다.

또 최소한 금년이나 2001년 중 신도시건설이 추진된다 해도 택지지구를 지정할 경우 2003년 이후에나 실제 건설 및 부동산 효과가 생겨난다.

건설, 입주까지는 이로부터 최소한 3년 이상 걸리게 되는 점을 감안하면 건설일감 창출도 심리적인 효과에 불과할 뿐이라고 개발부정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건교부는 판교 등 일부 신도시 개발문제와 관련해 조속한 시일내 당정협의를 다시 열어 사업추진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건교부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의 당정협의 과정에서 수도권 집중 억제시책과 지역 균형개발, 지역주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신도시 건설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혀 지속적인 추진의사를 강력히 피력했다. 앞으로 2년 뒤 대선임을 감안하면 여당의 표밭인 수도권 주택시장의 안정은 필수적이라는 얘기까지 곁들이고 있다.

때문에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을 주요 골자로한 지방발전계획 발표 후 신도시는 재차 수면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판교는 수도권 집중심화와 경부고속도로의 기능 저하라는 명분에 걸린데다 주민간의 갈등마저 증폭, 향후 험난한 항로를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용동 내외경제신문 기자 < ch100@n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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